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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설득하는 교육 혁신
현장을 설득하는 교육 혁신
  • 손화철
  • 승인 2022.11.28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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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오랜 시간 이런저런 방식으로 궁지에 몰린 대학에는 교육 혁신의 물결이 밑도 끝도 없이 밀려온다. 영어 강의, 융합교육, 복수전공, 자율전공, 자유학기, 산학연계, 현장형 교육, 기숙형 대학(Residential College) 등 대표적인 것들만 추려도 적지 않다. 최근에도 마이크로 디그리, 메타버스 수업, 인공지능 기반 교육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진다.

배울 것이 늘어난 첨단기술의 사회, 고등학교 졸업자의 70% 이상이 대학에 가는 세상에서 교육이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문제는 그 변화의 방향을 누가 어떻게 설정하고 어디서 그 동력을 찾는지이다. 필요한 것은 좋은 변화이지 변화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확한 현실 진단이 필요한데,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교육 리더들은 현실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선 교육 혁신의 장소인 대학의 하위 구성원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 교육을 말하는 정치인, 장관, 관료, 명망가, 전문가는 현장에 있지 않았거나 떠난 지 오래 된 이들이다. 그게 무슨 잘못은 아니지만, 정작 교육 혁신의 손발이 되어야 할 교수와 직원들의 현실을 잘 모른다는 것이 함정이다. 고용을 유지하려 논문을 쓰고, 교육부에 무죄를 증명하느라 수업 출석부를 보존하며, A4 인쇄지 한 박스를 사면 증빙서류를 만드느라 그 중 수십 장을 쓰는 누군가의 현실은 리더의 큰 그림에 점으로도 표시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학생의 상(像)은 시시각각 바뀐다. 자율전공을 말할 때는 꿈과 계획이 있고 기존의 틀을 깨는 진취적 학생을 염두에 둔다. 그러나 메타버스 교육을 제안하면서는 자기 아바타가 교수 아바타를 만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수업에 빠져드는 어린이를 떠올린다. 어느 순간 학생은 혁신 교육법을 적용하면 스티브 잡스로 자동 변모하는 깡통 로봇이지만, 다음 순간에는 유튜브에서 지식을 스스로 습득하고 교수의 강의가 아닌 토론으로 지혜를 얻는 소크라테스형 인재다.

교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00년 묵은 노트로 수업하고 변화엔 무조건 저항하는 존재라 욕을 하다가도, 돌연 수업 한 개에 두 가지 교수법과 세 가지 토론 주제를 준비하는 열정의 화신으로 변할 거라 믿는다. 자칭 교육 전문가의 이런저런 교육 혁신 전략을 듣다 보면 도대체 이들의 머릿속엔 어떤 학생과 교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사회적 무관심은 덤이다. 암기 위주의 입시 경쟁을 비난하면서 교육계 리더로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은 살짝 빼고, 새로운 제안에서는 그 현실을 쉽게 없는 셈 친다. 자신이 그 왜곡된 교육의 승자이니 경쟁 교육의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다. 멋진 교육혁신 방안을 만들어도 정작 그 대상인 학생들은 천정부지로 오른 방값을 내느라 아르바이트에 여념이 없다는 것 역시 남의 자식 이야기다.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할 리더가 있어야 하는 것도, 혁신의 의욕을 꺾는 현실 타령에 머무를 수 없는 것도 맞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하는 혁신은 설득력이 없다. 오늘날 차고 넘치는 대학 교육 혁신의 시도가 현장에서 냉소 받는 이유는 늘 승자인 사람들이 그 기득권을 유지한 채 자기의 현실과 꿈을 모두의 것인 양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말을 하더라도 현실의 애환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현장을 설득해야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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