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0:05 (금)
77편, 이 시들은
77편, 이 시들은
  • 최승우
  • 승인 2022.11.24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명수 지음 | 녹색평론사 | 192쪽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이후 꾸준하게 시작(詩作) 활동을 이어온 김명수 시인이 77편의 신작 시를 엮어 11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올해 희수를 맞은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무엇인가, 시를 왜 쓰는가, 라는 화두는 여전히 그의 문학활동의 중심에 있는 듯하다. 김명수 시인은 “시는 세계를 파악하는 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오직 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시대와 현실에 대응하고자 하는 시인의 문학적 실천이 1970~1980년대 동안에는 김창완, 김명인, 정호승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 거대담론에 근원적 의문을 제기하며 “무엇이 인간을 구속하고 무엇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를 사색하는 데 초점을 좀더 맞추고 있었다면, 근년에는 더욱 확장된 시야와 원숙한 기량이 드러나는 조어를 통해 “더 근원적으로 병들어가는 지구”로 표상되는 인간성 및 인류문명의 실존적 위기를 깊이 아파하면서 “사라지는 벌들과 절멸되는 고래들, 먼 우주를 밝히는 별들의 고독과 바위들의 적막”에 대해서, “꽃들과 열매들의 한없는 헌신”을 그려내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 것같이 보인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시인의 산문과 자전적인 시 등이 실려 있어서 김명수 시인의 시 세계와 철학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단절을 요구하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우리는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문학적 실천을 실행해야 할 것인가.” 산업기술문명은 우리 삶의 기초적 구조, 일상생활의 영역, 우리들의 내면까지 착실히 식민화해왔다. 그럼에도 자연과 우주적 연관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의식화하고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시인들이 있어서 우리는 여전히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만질 수 없는 것 … 이 산, 이 돌, 이 길에 있는 무형의 것들에 대한 화평을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시는 뒷냇물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 거란다. 그리고 살구꽃이 피어 있을 때의 마음을 받아 적는 거란다. 또 보리밭 위로 날아오르는 종달새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거란다. 그때 뒷냇물이 살구꽃이 보리밭이 종달새가 너희들에게 무슨 말을 걸어올 거야. 그걸 받아 적는 게 시라고 한단다. 모든 사물들은 다 말을 하고 있단다. 그 말을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지.”(「강6」 중에서)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