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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책사업 … 의학에 대한 道家的 해석
조선의 국책사업 … 의학에 대한 道家的 해석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05.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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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을 둘러싼 새로운 해석- 박석준 소장

'동의보감'에 대한 동아시아의 관심은 적지 않다. 지난 1월 베트남한약협회(VMAMES)가 6만5천 달러를 들여 '동의보감' 번역 및 출판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의 '동의보감' 연구는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동의보감을 들고 있는 허준


현재 '동의보감'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한 사람은 모두 4명. 그 중 가장 최근 논문은 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장의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과 '동의보감'의 역사적 성격'(경희대·한의학과, 2005)이다.

안규석 경희대 교수(한의학)는 "많은 한의사들이 약재처방에만 매여 '동의보감'을 읽는데, 이러한 지엽적 사고를 넘어 '동의보감'의 근본적인 사상을 돌이켜보게 한다"라며 논문에 의미를 뒀다.

'동의보감'이 허준 개인만의 노력으로 저술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한의학계에서 통용되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醫書는 모두 국가에서만 편찬될 수 있었으며, '동의보감' 역시 선조에서 광해군에 이르는 14년간 추진된 국책사업의 결과물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한 개인에게 25권 25책에 이르는 방대한 텍스트 집필을 맡겼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

'동의보감'은 왜 편찬됐는가

선조시대 국가에서 발주된 ''동의보감' 프로젝트'는 1596년에 시작돼 17년에 걸쳐 진행됐다. 정유재란으로 인한 2~3년 정도의 중단시기를 제외하더라도 집필 기간은 14~15년으로 추산된다. "이 시기 인건비는 낮았으나, 인쇄비용이 많이 들어 전체 규모로 따져보자면 요즘 돈으로 3백~4백억 정도의 비용이 들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박 소장의 추측이다. 

"허준 역시 제도적 형성물"이라고 말하는 그는 전근대 의학의 대표적 전범으로서 '동의보감'의 역사성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동의보감'의 기본 코드는 '도교'. 성리학에 기초한 조선 유교사회가 완성되는 16~17세기에 도가적 전통에 기반한 의서가 국가의 자금으로 저술된 이유는 뭘까.

그는 기본적으로 "노동력이 중시되는 농업시대에 治病사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의 건강을 국가가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중국의서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또 "도가 세력에 기반한 의학사업을 통해 왕실의 포용력을 내보이려 했을 것"이라는 가설도 조심스레 꺼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천문학, 농학, 의학을 유가적 맥락에서 흡수하려던 당시 분위기에 비춰봤을 때 지나친 해석"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김형찬 고려대 교수(한국철학)는 "도가 세력은 왕권의 정치적 동반세력이라기엔 너무 약했다. 전후 생존의 문제가 심각했고, 이에 따라 의술의 중요성도 부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보감'을 비하하는 학자들은 "'동의보감'은 90% 이상이 중국 의서를 인용하고 있어, 차라리 중국의서들을 직접 보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박 소장의 입장은 다르다. 그는 "述而不作은 조선 중기 이후 나타난 창조적 글쓰기의 한 유형으로 인용이 어떤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어떤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전한다.

'동의보감'은 '건착도'를 인용하면서 "形과 氣가 갖추어진 다음에 숙병이 생긴다(形氣已具而아[1])"고 하였으나, '건착도'에서는 "氣와 形과 質이 갖추어져 서로 나뉘지 않기 때문에 혼륜이라고 한다(氣形質具而未離, 故曰渾淪)"는 구절이 발견될 뿐이다. 이것은 명백한 '인용의 오류'다. 하지만, 박 소장은 이 구절을 '의도적 변형'으로 본다. '동의보감'의 논리 전개에서는 '質'이 불필요해 '氣形質'을 '形氣'로 바꿔 인용했다는 것이다.

신동원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과학기술사)는 박 소장의 생각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욱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은 허준의 문헌 취사선택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무수한 중국 의서 가운데 옥석만 가려낼 줄 알았던 허준의 재검증 능력이 더욱 주목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소장이 분석한 '동의보감'은 '황제내경'에 바탕한 김시습의 이론(조선 단학파)을 차용했으나, 도교적 내용에만 머무르지 않고 의학적 변용을 시도한다. 도교적 수양을 위한 기본 전제인 精氣神 이론을 기일원론으로 재해석하면서 도가의학을 의학 일반으로 승격시킨 것이 사례로 제시된다. 이러한 작업에서 도교적 분위기를 풍긴 것은 儒醫 정작이었고, 세부적인 내용의 지침을 마련한 것은 太醫 양예수였다. 하지만, '편집능력'이 뛰어난 허준이 총책임자가 됐다는 게 박 소장의 견해다.

현대어 번역도 학제적 작업으로

김호 경인교대 교수(사회교육)는 "공동저작일 뿐 아니라, 모든 학문들을 유교적 맥락으로 흡수하기 위한 유가와 도가, 의가의 학제적 프로젝트"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의서에는 선비들이 참여했다. 서술의 유려함과 전체적인 틀거리를 잡기 위해서다. '동의보감'의 경우에는 정작이 서술면을 담당했던 것. 요즘 식으로 보자면, 과학자들의 연구활동에 인문학자가 참여한 것이다.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장도 "'동의보감'은 철학적 요소가 많아 한의학 연구자만의 작업으로는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관련 학계는 조헌영 번역의 '동의보감'(여강출판사)과 허민의 번역을 손질하여 원문과 번역을 교차대조한 '동의보감 국역증보'(남산당)를 주로 참고했으나, 이 책에 대해서 번역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번역·간행된 '동의보감 내경편'(동의과학연구소, 2002)이 지금으로선 가장 훌륭한 번역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 번역엔 한의사, 동서양철학자, 과학연구자 등이 함께 참여, 10년 동안 번역 사업에 매달렸다. 그리고 현재 ''동의보감' 외형편'의 번역이 진행 중이다.

"'동의보감'의 내용 자체의 성격과 세계사적 의의,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라고 말한 신동원 교수는 "일본에서는 '본초강목'을 번역하는 데만 꼬박 20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그는 "'본초강목'보다 더욱 방대한 '동의보감'은 관련되는 모든 문헌들을 검토하면서 세심하게 번역해야 한다"면서 한국의 성과주의식 번역작업을 비판했다.

신 교수는 "'동의보감'을 의서로서 연구하는 부류(한의학),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허준의 생애와 '동의보감'을 연관지어 해석하는 부류(국사학), 그리고 '동의보감'의 철학적 사상을 연구하는 부류가 있다"며 "'동의보감' 자체의 성격과 세계사적 의의,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한 논의가 빈약한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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