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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과 허무주의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망과 허무주의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김병희
  • 승인 2022.11.25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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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⑪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설이나 신화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천재로 주목받다 갑자기 요절하면 신화화 되는데, 수필가이자 번역 문학가인 전혜린(1934~1965)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이후 니힐리즘(Nihilism)이란 말이 갑자기 유행했는데, 허무주의라는 우리말 번역어가 있는데도 문학청년들은 니힐리즘이란 말을 즐겨 썼다. 라틴어로 ‘없음’을 뜻하는 ‘니힐(Nihil)’에서 비롯된 니힐리즘은 절대적 진리나 도덕이란 없다며 오직 허무(虛無)의 심연을 직시한다. 

전혜린은 소녀 시절부터 절대로 평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다. 갑작스런 죽음은 그의 삶을 신비화했고 숱한 억측을 낳았다. 자살이냐 아니냐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당시 언론에서는 1월 10일 새벽에 심장마미로 사망했다고 전했다(“사랑을 점(占)치던 전혜린 여사” 조선일보, 1965. 1. 17.). 유고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출간되자(초판 1966. 5. 10.), 출간 15일 만에 재판을 찍고 16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동아PR연구소출판부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광고(동아일보, 1966. 6. 16.)

동아PR연구소출판부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광고를 보면(동아일보, 1966. 6. 16.), 저자의 고독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평론가들은 그에 대해 “아! 전혜린.”이라는 감탄사로 글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기원이 광고 헤드라인에서 시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아- 전혜린! 그 타버린 불꽃! 절찬리에 재판중(再版中)! 그는 서른 두해의 짧은 생애를 터질듯 팽팽하게 살고 갔다.” 여러 사람들이 추천사를 썼다. 

소설가 김승옥은 “참된 삶을 위해 불꽃처럼 온몸을 태우다 젊은 생애를 마친 전혜린! 그녀의 글귀의 한자 한자는 개척자의 애수가 깃들인 시와도 같다”고 평가했고,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전설이나 신화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전혜린- 그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지상에 살고 간 서른 두 해. 자기의 생을 완전하게 산 여자였다. 정말로 유일한 여자였다”라며 신화화의 가능성을 예측했다.

숙명여대의 성락희 교수는 “꽃이 피는 한 철 만큼의 그 짧은 생애를 전혜린 씨보다 누가 더 멋지게 열렬하게 살 수 있으랴. 끝없이 샘솟는 지혜의 활화산. 구구절절은 인간 본래의 고독과 희원(希願)의 불빛이요, 사상이요, 철학이다”라며 요절을 신비화했다.

서울대 의대의 김근수 교수는 자신이 천재적인 여자는 싫어하는데 이 책을 읽고서 작가가 새삼 좋아졌다고 했고, 그해 이화여대 메이퀸에 뽑힌 유중근 학생은 글 속에 눈물겨운 아름다움이 있다며 슬픔에 주목했다. 하드커버의 양장본 323쪽에 책값은 350원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판의 표지(1966)

그가 비운의 천재라는 명성을 얻은 데는 이 책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인이 1964년에 번역한 하이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따와 책 제목을 정했다. 동생인 전채린은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과 결단성을 갖고 언니는 생을 긍정했다.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동생은 언니가 생을 긍정했다고 썼으니 그런 분이 자살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이혼한 김철수 교수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도 있었고, 뒤늦게 세례도 받았는데 가톨릭에서 금지하는 자살을 택했을 리 없다. 전채린은 언니의 일생이 “꿈과 기쁨과 괴로움이 터질듯이 팽팽하게 찬 일생”이었다고 기술했으니, 심장마미로 사망했다는 언론 보도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전혜린에 대한 평가는 신화화된 측면이 있다. 수필(에세이)이 문학의 주요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에 그에 대한 과도한 주목은 문학적 성취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 고(故) 김윤식 교수도 전혜린의 작품을 “문학 초월 및 한국문학 초월 또는 문학 미달 및 한국문학 미달”이라고 평가했다(김윤식, 「침묵하기 위해 말해진 언어」, 『한국근대작가론고』. 일지사. 1982. 397-405쪽).

그러나 20여년 후에는 전혜린 수필의 문학사적 위상은 설정해야 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당시에 드문 독일 유학파라는 사실만으로도 선망의 대상이었을 텐데 요절은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켰으리라. 

어쨌든 전혜린의 글을 읽은 사람이든 아니든 그 이름만으로도 대중들은 반응을 나타냈다. 특히 문학소녀들은 강한 자의식으로 절망 자체를 탐닉했던 그의 허무주의에 깊이 빠졌다. 따라서 이 책은 1960년대의 암울했던 한국 사회는 애써 외면하고, 오히려 그 대척점에서 허무주의를 선망하도록 하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이 책에서는 선망과 허무주의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셈이다. 

일제 강점기의 경찰 출신인 그의 아버지 전봉덕은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의 배후자로 지목돼 헌병사령관 직에서 물러났지만 나중에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까지 지냈다. 권력자의 딸로 태어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는 전혜린이 철학자 니체와 그의 연인 루 살로메의 삶에 경도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작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해서 볼 것인지 합쳐 볼 것인지는 별도로 논의해야겠지만, 그의 절대 고독과 허무주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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