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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참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왜 이런 참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 김경화
  • 승인 2022.11.21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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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어린 아들 삼동의 예명(幼子三童瘞銘)’은 다산 정약용이 천연두로 3세 때 죽은 어린 아들의 모습을 회상하며 적은 글이다. 다산이 귀양에서 돌아온 뒤 아내가 임신하고 건강한 아들까지 태어났다. 다산은 이러한 세 가지 기쁨을 안긴 귀한 아들이라며 ‘삼동’(三童)이라 이름 지었다.

이런 사랑하는 아들이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피지도 못한 꽃처럼 숨졌을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편지 형식의 이 글 곳곳에서 자신의 얼굴을 쏙 빼닮아서 더욱 귀여워했던 아들을 향한 다산의 절절한 부성애가 느껴진다. 특히 아들을 향한 추모시를 보면 그의 먹먹하고 절절한 심정을 유추할 수 있다. 

“네 모습은 숯처럼 검게 타/ 예전의 사랑스러운 얼굴 다시 볼 수 없구나/ 너의 얼굴 어렴풋하여 기억조차 어려우니/ 우물 안에서 별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구나/ 네 영혼은 눈처럼 맑고 깨끗하여 /훨훨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들어갔구나 /구름 속은 천 리 만 리 멀기에, /부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천붕(天崩)’이라고 하고,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일찍 죽는 것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두 가지 슬픔 모두 가장 극한의 슬픔이지만, 그 중에서도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참척의 슬픔이 더 깊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그의 뛰어난 업적에 비해 너무나도 신산한 삶을 살았다.

정치적으로 다산은 그를 믿고 중용했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하여 18년간에 걸친 오랜 귀양 생활을 하였다. 가정적으로도 다산은 6남 3녀의 자녀 가운데 6명을 병마로 잃었다고 하는데 그는 처절한 ‘참척’의 슬픔을 여러 차례 맛본 것이다. 

2022년 10월 1일 인도네시아 자바의 도시 말랑에서 13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축구장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의 대강과 인도네시아 정부의 대처상황을 매스컴을 통해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지만, ‘내 일’처럼 공감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늦은 밤 서울 도심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것을 ‘이태원 핼러윈 참사’ 내지 ‘10·29 참사’라고 어떻게 부르든지 그 실질은 2022년 10월 29일 22시 15분경, 대한민국 서울에서 “있을 수 없는, 믿기 어려운” 참혹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고 모든 국민들이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고 당시 이태원에는 핼러윈을 앞두고 대규모 인파가 모이게 되었고, 이들이 일시에 매우 협소한 골목길에 몰려들어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면서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사고 당시 이러한 무질서 상황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할 공권력은 ‘그 곳에, 그 시간’에 충분히 존재하지 않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최대 인명 사고가 되었고, 현재 사망자는 158명에 달한다. 특히 사망자 연령대 별로는 20~30대가 133명에 이른다고 한다. 나이에 따라 가족이 느끼는 슬픔에 경중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망자 대부분이 젊은이들이고, 이들의 생때같은 죽음마다 그 부모들이 느끼고 있을 ‘참척’의 고통이 얼마나 절절할지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다산은 목민심서 애민 6조(愛民六條) 중 구재(救災) 단락에서 “무릇 재해와 액운으로 불에 타고 물에 빠진 사태에서 구해내는 일을 내 것이 불타고 내 것이 빠진 듯이 하여 조금도 늦추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재난이 생길 것을 생각해서 예방하는 것이 재난을 당한 후에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낫다”라는 점을 설파했다.

여기서 다산은 목민관 즉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불가완야(不可緩也)’ 즉 재난에 대처할 때 신속하게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예방조치를 적시에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인재의 측면이 크다”라는 것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다산의 ‘구재(救災)’에 대한 원칙은 정부가 향후 재난 대비와 안전 강화를 위해 뼈아프게 새겨야 할 점이다.  

왜 이런 참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그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그 중핵을 이루는 문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재난 및 안전관리에 대한 총체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헌법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라고 할 수 있으며, 헌법과 재난안전법 등 많은 법률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제10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헌법 제34조 6항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재난 및 안전관리에 대한 국가책무를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이 참에 ‘총체적 재난 및 안전관리시스템’을 다시금 정비해야 한다. 법과 제도에 미비한 점은 없는지, 기존 법령이나 안전관련 매뉴얼 등을 준수하고 적절하게 이행하였는지를 철저하게 살펴보고 보완해야 한다.

국가와 시민사회는 이번 참사로 가족 특히 자녀를 황망하게 떠나보내고 참척의 슬픔에 빠진 많은 국민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상호 협조하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런 참사가 재발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이러한 재난과 국가적 슬픔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김경화 편집기획위원
동의과학대 경찰경호행정과 교수·기획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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