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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 만나는 다른 분야의 얼굴
건축에서 만나는 다른 분야의 얼굴
  • 정만영 서울산업대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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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현대건축과 비표상』(정인하 지음, 아카넷, 2006, 298쪽)

‘현대건축과 비표상’은 ‘근대modern’와 대비되는 ‘현대’를 규정하기 위해 거론되는 수많은 개념들이 어떤 양상으로 건축과 연관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현대’를 규정하는 개념들은 근대적 주체의 동일성과 표상을 비판하는 비동일성 또는 차이와 비표상을 큰 가닥으로 해서, 세부적인 층위에서 복잡하게 분화되면서 서로 엇물려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에 따르자면 가족유사성(예를 들어서 자매가 서로 닮지 않았을 경우에도, 언니는 엄마의 코와 아빠의 눈을 닮고, 동생은 엄마의 눈과 아빠의 입을 닮는 것처럼, 부분적인 특성이 서로 공유되어서 가족 전체로는 닮아 보이는 것)을 지니고 있는 이 개념들은 부분적으로 유사하면서도 방향이 달라서, 현대 건축을 설명하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쇄구조로 묶여있는 다른 분야의 개념들을 끌어 들이게 된다. 이 책의 장점은 비교적 간명한 방식으로 ‘현대’의 건축적 지형을 파악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준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안내받는 독자는 항상 매끄러운 안내 속에 감춰진 위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안내는 유용함과 편안함에 비례한 만큼의 생략과 과장 그리고 이로 인한 왜곡을 감추고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전체적 지형을 안내하기 위해 다소 비대칭적으로 설정된 6개의 거점들을 각각 자립적인 장으로 구성하였다. 1장에서는 저자의 관점이 강하게 반영된 ‘새로운 형식주의’라는 틀에 1970년대를 중심으로 한 포스트모던 건축의 논의를 슬그머니 끼워 넣었는데, 형식주의에 대한 논의를 지나치게 확장시켜서 형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밋밋하고 동질적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서 형식을 통해 자동화된 일상적 지각을 벗어나는 기법을 강조한 러시아 형식주의에서부터 “모든 것을 가장 단순한 이진법의 숫자로 형식화되어 보편적으로 소통가능한 정보로 가공”(25쪽)하는 컴퓨터의 자동화 형식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에 무차별적으로 형식이라는 말에 대응시키는 것은, 마치 지나가는 나그네가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 버렸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난폭해 보인다.

2장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해체와 차이를 출발점으로 한 건축에 초점을 맞춘 반면, 질 들뢰즈와 연관성이 깊은 주름(3장)과 다이어그램(5장), 그리고 디지털과 가상(4장)을 거점으로 한 내용은 90년대 중반 이후의 건축에 집중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도시이론을 다룬 6장에서는 다시 60년대부터 되돌아가서, 비표상성과 새로운 도시이론을 연관시킨다. 각 장의 내용을 개별적 에피소드로 따로따로 읽으면, 현대건축에 복잡, 다양하게 얽혀있는 다른 분야의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서 소화시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장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각 장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갖는 방대한 내용을 압축하고 있어서, 구별되어야 할 차별성이 무시되기도 한다. 특히 독립적인 장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차이가 아니라 비표상이라는 지평에서 동일한 흐름으로 파악된 것이 확인된다. ‘포스트모던 건축’, ‘해체 건축’, ‘들뢰즈 또는 디지털에 기반을 둔 건축’이 역사적인 시간 속에서 서로 대립하면서 벌였던 격투의 생생한 흔적이 말쑥하게 지워진 것도 비표상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일반화시킨 것에서 비롯된 듯 보인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입장을 들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쟁점이 제대로 부각되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마지막으로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서 거론된 다른 분야의 사유들이 건축에서 자리잡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사람의 얼굴로 비유하자면 그 사유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온전하게 제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건축은 아무런 저항을 일으키지 않는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건축가가 자신의 건축에 창작적 움직임을 유발시키는 동인으로 끌어안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고투의 과정을 거치면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일그러진 인물화만큼이나 뭉그러지고 원형에서 멀어진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건축은 투사하는대로 투영되는 스크린이 아니다. 다시 말해 들뢰즈의 사고나 디지털이 건축에서 그토록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 그 강도만큼이나 크게 일그러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그 일그러짐의 크기를 확인하는 것이야 말로 ‘건축’의 이론가가 견지해야 할 입장이 아닐까? 이 책에서 만나는 다른 분야의 사유가 온전한 모습일수록 안내받는 필자의 마음은 불편하다.

정만영 / 서울산업대·건축학

필자는 서울시립대에서 ‘건축형태의 자의적 생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르 꼬르뷔제와 루이스 칸 건축공간에서의 가시성과 가촉성’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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