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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없는 전쟁 ‘식량의 무기화’···굶주림 원인은 정치적 불평등
총성 없는 전쟁 ‘식량의 무기화’···굶주림 원인은 정치적 불평등
  • 최승우
  • 승인 2022.11.28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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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㉗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5일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가 「불평등과 빈곤·기아·식량문제: 생물종 다양성」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8강은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과)의 「팬데믹 시대의 개인과 사회」, 제29강은 안동일 연세대 교수(보건대학원)의 「보건의료 기술과 국제 보건」, 제30강은 김환석 국민대 명예교수(사회학과)의 「생명정치, 자유와 연대」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식량의 생산, 유통, 소비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전 지구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시장의 기능을 왜곡시키는 정부 차원의 섣부른 보조금 정책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양곡관리법도 예외가 아니다.”

전 세계의 식량 사정이 급격하게 불안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19 팬데믹,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다툼, 에너지 수급 불안정, 기후위기 심화 등의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이고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다.

식량 안보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되고, 식량 자원의 무기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식량 가격이 55.7%나 폭등했다. 우리나라의 식품 관련 물가도 심각하게 들썩이고 있다. 현대 화학 농업에 필수적인 화학비료의 수급도 불안해지고 있다.

식량 위기가 낯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 역사는 극심한 굶주림의 경험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고통스러운 보릿고개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지난 100년 동안 사정이 달랐다. 지구촌 전체의 식량 사정은 오히려 크게 개선됐다. 세계 인구가 16억 명 에서 80억 명으로 무려 5배나 늘어났는데도 그렇다. 20세기 동안에 식량 생산량이 10배 이상 늘어난 덕분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는 “식량의 절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식량 안보 상황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라며 “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 상황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17억9천500만 명이 극심한 굶주림에 의한 심각한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굶주림이 발생하는 양상이 달라졌다. 현재의 식량 수급 상황은 수요와 공급을 분석하는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의 틀을 크게 벗어나버렸다.

단순히 식량생산의 부족이 아니라 고질적인 정치·경제·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굶주림은 인재에 더 가까운 일이 돼버렸다. 유엔(UN)이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식량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지금도 굶주림의 문제는 여전하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굶주림이 극에 달했던 2010년보다는 줄어들었다. 과거의 굶주림과 기아는 식량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1세기의 현실은 달라졌다.

실제로 20세기 말에는 전 세계 식량 생산량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을 넘어섰다. 오늘날의 굶주림은 가난과 불평등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분석이다. 현재의 굶주림은 낮은 임금과 실업률 증가에 의한 경제적 위기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21세기의 굶주림은 단순히 식량 생산 기술의 혁신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이다. 불 평등과 가난이 굶주림을 악화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우리의 식량 사정은 언제나 심각했다. 18세기부터 고질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려왔던 우리의 식량 사정은 1970년대의 ‘통일벼’ 개발을 계기로 크게 개선됐다. 1990년대에 70%를 웃돌았던 식량 자급률이 이제는 45.8%로 떨어졌다. 

과거 대기근의 아픔을 기억하는 중국은 중앙 정부가 쌀, 밀, 옥수수, 대두 등 주요 곡물 소비량의 1년치를 비축하고 있다. 일본도 쌀 100만 톤과 함께 상당한 양의 밀과 사료용 곡물을 비축해놓았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농민들에게 어차피 남아도는 쌀 생산만 부추기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식량의 절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식량 안보 상황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국제 시장의 위기가 국내 식량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파괴적이다. 실제로 최근 주요국의 식량과 비료 수출 제한 조치로 국내의 비료 가격은 80%가 뛰어올랐고, 곡물과 유지 가격도 각각 45%와 30% 상승했다.

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 상황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생존을 위한 식량 생산은 필연적으로 자연 생태계의 생물종 다양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식량의 상업적 생산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통해서 식량 생산에 활용되는 농작물, 가축, 양식 어종의 품종이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식량의 수요 증가에 따라 경작과 목축의 면적이 늘어나면서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물론 그런 부작용이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농경 목축에 의한 환경 파괴의 결과로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고대 문명도 많았다. 다만 농경목축이 환경에 미치는 피해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현대 과학으로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던 시절의 병충해와 감염병은 인간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불평등과 빈곤의 완벽한 퇴치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충분한 식량, 깨끗한 물, 위생 환경을 제공해서 ‘아무도 소외되지 않도록 만들자’는 것이 유엔의 목표이다.

자연 생태계로부터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식량 생산에 활용하는 농작물, 가축, 어패류의 품질을 개량하기 위한 유전자 변형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식량의 저장, 유통, 소비 과정에서의 낭비를 줄이고, 식품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도 절박하다.

식량 생산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기후 변화, 환경 변화, 생물종 다양성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극한 기상 현상에 충분한 내성을 가진 품종이 필요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신품종도 개발해야 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식량의 생산, 유통, 소비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전 지구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국제 사회에서 식량의 무기화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의 합리적인 식량 정책도 중요하다. 시장의 기능을 왜곡시키는 정부 차원의 섣부른 보조금 정책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양곡관리법도 예외가 아니다. 시간적 유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농축수산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식량 정책을 마련하고, 합리적으로 추진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는 지구상의 인구를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사회의 팽창을 전제로 하는 사회·경제적 제도만으로는 인류의 안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과도한 증식으로 참혹한 공멸의 운명을 맞이하는 부영양화의 길을 회피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우리의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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