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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렛대’ 삼아야 차세대 반도체 살린다
미국 ‘지렛대’ 삼아야 차세대 반도체 살린다
  • 유무수
  • 승인 2022.11.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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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반도체 삼국지』 권석준 지음 | 뿌리와이파리 | 360쪽

전 세계 80퍼센트 점유하던 일본은 20년 만에 몰락...성공에 도취, 소비자 트렌드 마케팅 인력 우대 안 해
반도체 전문학과, 장기적 계획 없이 신설·증원 재고해야

반도체 공학자인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화학공학과)는 이 책에서 △반도체 산업의 리더였던 일본은 왜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는가 △미국이 견제하려는 중국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미중 기술패권 경쟁 상황에서 한국이 헤쳐 나가야 할 도전과 대응전략은 무엇인가를 분석했다.

에도 시대(1603-1867) 이래 일본사회에는 “한 장소에서 모든 것을 바친다”라는 ‘일소현명(一所懸命)’ 철학이 뿌리를 내렸다. 오늘날에는 한 직업, 한 회사, 한 분야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확장됐다. 이러한 정신은 꾸준히 집중된 연구와 장기적인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2000년 이후 18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화학공학과)는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전문학과 설치는 장기적 계획이 없다면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픽사베이

일본 전자산업이 승승장구할 때 일본 언론은 “해냈다 일본!”하며 일본의 앞선 기술력을 찬양했다. 일본 기업은 기술개발 인력을 중심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내렸다. 기술개발 인력은 자신들이 성공했던 기술개발의 관성에 빠져 있었고 시장변화에 둔감했다. 소비자 트렌드를 관찰하는 마케팅 인력은 기술인력 만큼 우대하지 않았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뛴다는 ‘무어의 법칙’이 제시될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과거의 성공에 도취된 일관성의 문화는 ‘파괴적 혁신’으로 창의성을 구현하는 기업에 추월당할 운명을 조성했다. 기술개발과 함께 시장변화를 기민하게 관찰하는 마케팅 인력도 존중하고 키울 필요가 있었다. 

한 때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글로벌 시장 80퍼센트 점유, 반도체 산업 매출액 상위 10개 중 6개(NEC,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 후지쓰, 마쓰시타)로 시장지배력을 행사했던 일본이 반도체 시장에서 거의 몰락하는 지경에 빠진 직접적인 계기는 1980년∼199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의 견제이며, 넓게 보면 산업구조 개편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했다. 정부가 강력하게 주도하는 산업정책은 신속한 경영판단을 저해하고 민첩한 순발력을 억압하는 패착으로 작용했다. 

일본 정부는 대만 TSMC를 지원하여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운영토록 했으며 미국과의 협력도 적극 강화하며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일본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분야, 특허와 같은 지적 기반, 학계의 기초연구 기반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지니고 있으며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일본 정부투자 사례는 벤치마킹해야 한다.  

 

 

반도체 굴기와 불안한 내실 그리고 잠재력

2020년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의 75퍼센트, 태블릿 PC 80퍼센트, 노트북 컴퓨터 90퍼센트, 디지털 TV 50퍼센트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중국에서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회사가 1990년대에는 76개였고 2016년에는 1천4백 개로 늘어났다. 2020년대에는 4차 산업 관련 수요의 증가로 3천 개 이상이 될 전망이다. 

회사 이름부터 ‘중화(華) 민족을 위(爲)하여’이며 중국인민군 통신부대 장교출신이 창업한 화웨이는 관급사업을 독점하여 내수 위주로 성장하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캐나다 업체인 노텔 제품을 OEM으로 생산했다. 1895년에 창업한 노텔은 임직원이 10만 명에 달한 적도 있으며 2000년에는 279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기술기업이었다. 노텔의 제품 설계도와 각종 내부 기밀사항이 중국의 해커를 통해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됐다. 노텔의 조사결과 화웨이가 생산하던 라우티의 핵심 코드 일부가 자사의 소스코드와 동일했고, 특허가 걸려 있는 알고리즘도 일치했다. 글로벌 시장이 겹치게 된 노텔과 화웨이의 수주 경쟁에서 가격을 낮게 책정한 화웨이는 거듭 승리했고 노텔은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중국 기업의 외국기업 해킹, 기술탈취, 중국에 진출한 합자회사 지적재산권 도용 등은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을 견제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저자에 의하면, 설령 편법을 구사하더라도 생산기지나 소비시장의 한계 내에서 발전하는 것은 글로벌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 허용할 수 있었으나 미국과 패권을 다툴 정도의 경제 급팽창과 더불어 중국이 첨단산업과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위치로 올라서자 미국은 용납하기 어려웠고 견제의 결심으로 이어졌다. 

제조의 초강대국이면서 핵심기술을 자급자족하겠다는 ‘중국제조 2025’를 선언한 중국 정부의 정책은 중앙단위, 지방단위, 회사단위로 재정혜택이 중구난방으로 집행되는 오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 와중에 혜성처럼 등장한 우한홍신(HSMC)은 2조6천억 원의 정부보조금을 챙겼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처음부터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사기극이었다. 2020년 지방정부의 부채는 4천6백조 원이며 국가부채는 45조 달러이다. 일당 독재 체제는 국가 재정부실의 문제를 또 무리수로 얼버무리려 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곪아터질 우려가 있다. 초미세 패터닝 같은 일부 최첨단 반도체 공정기술에서는 글로벌 선두기업과 중국업체의 기술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독자 표준을 설정하여 일대일로에 참여한 나라에 중국의 표준규격을 강요하며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중국 반도체 기술굴기가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으려면 먼저 창의적인 문화와 분위기를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20년 간 정부차원의 전략적 지원으로 재료과학, 물리학, 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눈부신 약진을 이룩한 부분은 중국의 성장 잠재력이다. 중국 연구자들의 논문편수와 질이 크게 높아졌으며 화학과 재료공학은 세계 최강의 수준이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 한국의 도전과 대응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1960년대 중반 한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교육수준, 외국 자본에 유리한 조세환경 제공 등으로 미국 반도체 업체의 공장설립을 유치하며 시작됐다. 1964년 상공부는 국가 주도의 중점 수출 산업의 하나로 전자산업을 선정했다. 1966년 한국 최초의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된 후 국가 주도의 반도체 기초연구도 같이 시작됐다. 1983년에 반도체 사업진출을 시작한 삼성은 2021년 말 기준 반도체 시장 매출액 규모로 점유율에서 인텔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SK 하이닉스는 4위다. 2021년 반도체 파운드리에서 세계 1위는 52.9%를 차지한 대만의 TSMC이며 삼성전자는 17.3%로 2위를 기록했다. 

미중 패권경쟁의 국면에서 미국의 옵션은 중국에 대한 기술통제이며 ‘중국을 예측 가능한 플레이어로 남게 만드는 것’에서 ‘중국을 미국 주도 체계에서 분리시키는 것’까지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을 제외하려 할 때 미국은 한국, 대만, 일본을 동참시키는 ‘칩4 동맹’의 방법을 선택할 것이며, 이 경우 중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또 다른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2019년 기준 한국의 수출액 규모는 939억 달러이며 이는 한국 수출품에서 가장 비중이 높다. ‘칩4 동맹’이 확고해지면 한국과 대만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며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량이 대폭 축소되는 도전에 직면한다. 

저자의 제안에 의하면, 한국은 모호한 포지션에서 얻던 수익 모형을 수정하여 무게 중심을 ‘최고 우방국’인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동맹에 포함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조정해야 하며,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 기반 공정을 미국에 확보하고 지렛대로 삼아 기반시설 지원, 감세, 기술 IP 로열티 혜택, 보조금 확보 등을 얻어내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 ICT 표준 그룹에는 적극 참여해야 하며 미국에 R&D 센터도 설치·운영함으로써 차세대 반도체 사업을 대비해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함으로 대처하여 전선의 확대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수익창출 모델 다변화를 위해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소비시장을 계발해야 한다. 비용절감을 위해 일본 및 대만과 전략적 제휴와 협력도 추진해야 한다. 다국적 인재를 한국 기업 인력으로 확보하는 방안까지 고려해야 한다.

저자는 지난 5월에 출범한 윤석렬 정부가 반도체 전문학과를 장기적 계획 없이 설치하여 급하게 정원을 증원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정책은 반도체 산업 자체를 타깃으로 하는 인력 양성이 아닌 전자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 물리, 화학 등 관련 전공의 내실화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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