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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잡기
삶의 방향잡기
  • 배철현 서울대
  • 승인 2006.04.2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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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배철현/서울대·종교학

인간은 안개와 같은 순간들을 사는 동물이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일 수 있다. 다양한 직업과 삶의 모습 가운데, 내가 교수가 되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좋아하는 학문을 항상 접할 수 있어, 나는 현재의 내 삶에 감사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2003년도에 서울대에 와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학교부터 비정상적으로 공부에 매달려 온 학생들에게, 대학이 충분한 미래의 삶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3~4학년이 되면 먹고 살 걱정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제한 정보로 삶의 형태를 결정해 버리곤 했다. 소위 ‘고시’를 공부하는 학생들 중 상당수가 삶에 대한 모호함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한 몸부림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으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자기 신화’를 찾는 여행을 촉구한다. 각자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삶의 모습을 찾고, 거기에 매진하도록 다음과 같이 독려한다: 첫째, 소규모 모임을 통해, 학생 한사람 한사람에 관한 인간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나는 학교에서 세 가지 소규모 모임을 가진다. 한 과목은 서울대 인문대학 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소규모 원전읽기’ 과목이 인문대학에 50개정도 개설되었는데, 인원제한은 5명이고 1학점 수업이다. 나는 ‘고전 히브리어를 통한 구약성서 읽기’를 개설하여, 5명 학생들과 격의 없이 자신의 고민을 말하게 하였다. 나는 수업 외에 다른 두 모임을 가진다. 1시간씩 ‘코란 읽기’와 ‘구약성서 룻기’를 각각 원전으로 읽는다.

둘째, 일반강의가 아무리 대형 강의라 할지라도 수업 카페를 이용하여, 수업에 관련된 혹은 관련이 없더라도 자신들에 중요한 질문들을 5개 이상 카페 게시판을 올리도록(유명 혹은 무명씨로) 하여, 다른 학생들과 그 문제를 같이 고민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학기말 페이퍼는 학생들이 삶을 어떻게 설계해야하는지를 각 과목의 특성에 맞추어 작성하도록 하여, 코멘트를 해 준다. 수업카페에서 채팅하다 지금은 내가 몇몇 학생들의 삶의 멘토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난 한 여학생의 사례를 이야기 하고 싶다. 2000년에 한국에 들어와 K대에서 강사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수메르어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한 여학생이 수업 후 면담을 요청했다. 이 학생은 1년 전에 서반어학과를 졸업하고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중, 고대 문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수업 청강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청강을 허락하고 한 학기동안 이 학생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앞으로 학자로서 충분한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학생 자신이 “목숨을 바쳐” 공부할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이었다. 이 학생은 1년 후 시카고 대학에 고대 근동학과 박사과정에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수여하게 되었고 지금은 가장 오래된 서양문명인 힛타이트 문명을 전공하고, 힛타이트 문명과 그리스 문명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2~3년 후, 한국에 이 학생이 돌아온다면, 이 방면의 최고 권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 학생이 한국에서 교수직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물론 장담할 수 없지만, 이 학생이 이미 학문을 통해 그 기쁨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교수직 이상의 ‘자기 신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학문에 매료되어 사랑하게 되었기에 그 열병으로 충분히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라는 ‘문지방’이 불안한 단계이기도 하지만 가장 창조성이 발휘되는 시간이기에, 나는 이들을 높은 산으로 인도하고 싶다. 거기에서는 다양한 의미 있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을 찾는 ‘죽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삶의 방향’을 잡도록 오리엔테이션 시키고 싶다.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지 못하면, 그런 인생에는 열정도 없고, 그 열정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연민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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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 2006-04-27 21:02:16
잘 읽었어요. 배 선생. 학문의 재미와 보람을 느끼게 한다는 것, 그걸 가르쳐 주면 학생들은 스스로 연구하지, 좋아서 연구하지. 참 중요한 말이야.
목숨을 걸고 연구한다는 말, 비록 배고픈 연구자의 삶이지만, 구도자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말이야. 좋은 글 우리 동문 카페에 갖고 가요. 몸 건강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