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琉璃 안에 로댕을 품다…배경이자 주인공이 된 건물
琉璃 안에 로댕을 품다…배경이자 주인공이 된 건물
  • 서현 한양대 교수
  • 승인 2006.04.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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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현대건축 8. 문화의 容器 ‘로댕갤러리’

▲로댕갤러리 / 서울 종로구 태평로 1995~1998 ©
칼레의 시민과 지옥의 문. 이들은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청동녹이 눈물처럼 흘러내려야 하는 조각이다. 그래야 그 터질 것 같은 박력이 강조되는 그런 조각들이다. 그러기에 건축가가 직면한 문제는 모순적인 것들이었다.

필요한 것은 실내공간이다. 그러나 원래 로댕의 조각이 있어야 하는 공간처럼 실외의 분위기가 나는 실내공간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혼란스런 외부의 모습을 실내로 모두 끌고 들어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등장인물들의 손끝과 발끝의 디테일이 어떻게 전체적인 우악스런 힘을 만들어내는지를 정교하게 감상하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로댕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수준의 건물을 만들어야 했다. 이 건물은 로댕을 담는 그릇이고 로댕을 보여주는 배경이 되어야 한다.

건축가는 재료로 유리를 선택했다. 맑은 유리가 아니고 반투명한 유리, 즉 젖빛유리였다. 건물의 내부는 실외공간처럼 환해졌다. 벽면에 스며드는 외부의 빛과 그림자에 의해 외부 공간의 상황은 실내에 부드럽게 전해진다.

건축가는 이 벽이 로댕의 배경임을 잊지 않았다. 유리를 끼우는 방식도 가장 추상적인, 혹은 가장 무성격한 방식을 선택했다. 건축가는 이 벽을 휘어서 공간을 만들었다. 모서리가 없는 미술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모서리가 만드는 선도 보이지 않는 그런 밋밋한 벽면이 이제 로댕의 뒤에 배경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건축가는 칼레의 시민과 지옥의 문이 갖는 서로 다른 공간적 요구조건을 파악했다. 칼레의 시민은 여섯 명의 사람이 방향을 가지고 움직여 나간다. 패전한 도시의 생존을 위해 적장 앞에 스스로 목숨을 내건 여섯 사람. 그들은 그 죽음의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옥의 문은 좌우대칭이다. 두 짝으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문은 굳건한 중심축을 형성한다. 한번 닫히면 이승의 어떤 힘으로도 다시는 열리지 않을 듯한 무게감이 거기 표현되어 있다.

건축가는 서로 다른 모양으로 굽은 두 개의 벽을 배치했다. 두 벽이 겹쳐지는 틈을 이용해 입구가 만들어졌다. 그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으로 움직여나가는 칼레의 시민이 보인다. 벽면은 칼레의 시민 뒤쪽으로 이어지면서 관람객의 걸음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끌어 준다.

칼레의 시민의 뒤에 지옥의 문이 있다. 좌우대칭이면서 앞부분만 있는 이 문의 뒷면에는 석회암의 벽체가 붙어있다. 건축가는 지옥의 문은 그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는 그런 조각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 앞에 걸터앉을 구조물을 마련해놓고 있다. 역시 큼직한 석회암을 잘라 만든 이 벤치를 통해 건축가는 이 작품이 묵상을 통해 음미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깨끗이 갈아놓은 바닥의 돌마감이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박력의  조각을 미술관에서 부유하듯이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 건물의 외관은 자와 컴파스를 머리 속에 가지고 판단하면 비논리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건물이 담아야 하는 조각의 가치와 의미에 의해 도출된 형태다. 그 결과물로서의 건물은 담아야 할 조각을 위해서는 기꺼이 배경으로 남아 있지만 도시 위에서는 자신이 범상치 않은 주인공임을 과시하고 있다.

서현 / 한양대 건축대학원
43세.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과 미 콜럼비아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창조건축에서 일했으며 월간 ‘이상건축’ 편집위원과 건설교통부 신도시포럼 위원을 맡고 있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와 공저 ‘서울 도시와 건축’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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