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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네트워크된 인간…역사학, 환경 문제에 답하다
자연과 네트워크된 인간…역사학, 환경 문제에 답하다
  • 박경석
  • 승인 2022.11.07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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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인간’ 주제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

지난달 28일부터 이틀간 연세대에선 제65회 전국역사학대회가 펼쳐졌다. 첫날에는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환경사 연구를 개척해온 신진 연구자와 중견 연구자의 공동주제 발표와 토론이 열렸다. 다음날에는 25개 분과학회별로 환경 문제와 관련한 주제 발표와 각 학회 특성을 살린 발표가 진행됐다. 이번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조직위원장을 맡은 박경석 연세대 교수(사학과) 학술대회 후기를 보내왔다. 

환경 문제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 산업화로 인류는 유례없이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과 온난화,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동식물의 대량 멸종 사태 등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당면 문제로 떠올랐다. 그래서 ‘환경’ 문제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65회 전국역사학대회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간 연세대에서 펼쳐졌다. 올해 주제는 ‘환경과 인간’으로 역사학의 역할부터 환경사 연구 등을 다뤘다. 사진=박경석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65회 전국역사학대회는 공동주제를 “환경과 인간”으로 정하고, 지난달 28일부터 이틀간 연세대에서 흥미로운 발표와 진지한 토론을 진행했다. 1958년 시작한 전국역사학대회가 역사학과 관련한 중요한 주제를 다양하게 다루었으나 선도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역사적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제기한 것은 오늘날 당면한 문제와 상황 앞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번 역사학대회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공동주제 세션과 분과학회 발표로 나누어 진행했다. 공동주제 세션에서는 ‘환경과 인간’이라는 공동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공동 세션’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분야에서 각각 2명의 연구자가 발표에 나섰고, 분야마다 거시적인 접근과 미시적인 관찰을 안배하고자 했다. 특히, 환경사 연구는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주제이기 때문에 유독 신진 연구자의 발표가 많았다.

 

역사학 역할, 인류세·자본세 개념 탈피

첫 번째 발표에 나선 고태우 서울대 교수(국사학과)는 환경 위기에 대해 “역사학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 보려는 전국역사학대회의 취지에 걸맞게 거시적인 관점을 제시하였다. 최근 거론되는 ‘인류세’나 ‘자본세’의 개념, ‘글로벌’을 넘어 행성으로서의 지구에 주목하는 인문학적 관심, 20세기 한국에서의 생태환경과 성장·발전의 관계, ‘새로운 실천적 역사학으로서의 생태환경사’ 등을 설명하고 제안하였다. 역사학대회의 막을 열기에 매우 적합한 발표였다. 두 번째 서민수 건국대 연구원은 ‘생태환경사’의 관점에서 신라의 왕경 개발과 불교 수용을 인간과 자연의 긴장이 높아지는 과정으로 파악했다.

동양사 분야에서 세 번째 김현선 동국대 문화학술원 HK연구교수는 청대 양호(兩湖) 지역의 산지 개발과 이로 인한 환경 변화를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통해 규명하였다. 특히 청대에 이미 환경 파괴와 전염병 유행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논증했는데, 목하 코로나19가 발생한 맥락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환경 문제가 근대 자본주의 발전 이후에 비로소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 깊은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였다. 네 번째 김범성 도쿄이과대 교수는 근대 일본이 자외선을 어떻게 인식하고 취급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자외선이라는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인류와 자연(태양)의 관계나 근대 과학 문명에 대한 인식, 민족주의와 환경 문제의 연관성 등과 같은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주제에 접근한 흥미로운 발표였다.

서양사 분야의 발표는 환경 문제에 관한 한 서양이 다소 앞선 경험을 가졌다는 점에서 주목하였다. 다섯 번째 이혜민 연세대 교수(사학과)는 프랑스 환경사 연구의 계보를 포함해 주요한 맥락을 잘 짚어주었다. 한국의 환경사 연구가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는 점에서 유럽의 환경사 연구를 거시적으로 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여섯 번째 고유경 원광대 교수(역사교육과)는 1980년대 독일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진행했던 ‘숲의 죽음(Waldsterben)’ 논쟁을 언론, 국가(정치), 시민사회의 차원에서 해명하고 환경·정치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시민사회가 ‘숲의 죽음’ 논쟁에서 ‘생태의 1980년대’라는 담론을 끌어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 경제개발을 신성시했던 ‘대망의 80년대’라는 개발독재의 슬로건이 떠올라 더욱더 그랬다. 또한 이 발표는 현재의 ‘생태시대’로 전환한 독일의 경험이 잘 소개되어 ‘공동 세션’ 전체의 시의성을 높여주었다. 

 

인간은 인문·자연적 환경 속 네트워킹 존재

이어진 ‘종합토론’ 순서에서도 흥미로운 논의가 이어졌다. 그중에 “환경사를 하다 보면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된다”라는 발언이 주된 토론의 물꼬를 터주었다. 사실 환경 문제는 인간과 자연환경이 대립해서 생겨났고 이것은 인간의 잘못이다. 이런 잘못은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자연환경과의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인간 중심의 사고이고, 이것으로는 환경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지구중심주의’가 되어야 한다. 즉 지구가 언제든지 인간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 5장에 나오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이 연상됐다. 

그렇다면 역사학이 인간이 아닌 자연 또는 지구로 관심의 대상을 옮겨야 하는 것인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환경 문제가 지구라는 행성에 위해를 가할 수는 없다. 그냥 ‘인류문명’이 위험에 빠지고 소멸할 뿐이다.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자연현상일 뿐이고 인간사회에 해를 끼칠 때 비로소 ‘재난’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와 관련해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심을 ‘자연(지구)’으로 옮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은 항상 인문·자연적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의 ‘네트워킹된 인간’에 관심을 두는 것이라는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상세히 언급할 겨를은 없지만, 분과학회에서도 질병과 환경 영향의 경제사, 환경과 도시, 재난 문명 그리고 역사교육, 환경과 삶의 변화, 과학사와 환경, 인간과 환경이 만난 미술, 공간을 통해 본 환경, 여성과 환경, 지역의 환경과 환경으로서의 지역, 건축과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박경석
연세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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