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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법도 가운데에서 자유로이 훨훨 날아다니는 경지”
“정신이 법도 가운데에서 자유로이 훨훨 날아다니는 경지”
  • 정병모 경주대
  • 승인 2006.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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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한국의 美-최고 예술품을 찾아서 ①‘단원풍속도첩’

[편집자주] 조선시대 발전한 풍속화의 최고 작품으로 전문가들은 ‘단원풍속도첩’을 꼽았다. 물론 신윤복과 김득신도 그에 견줄만하다고는 하지만, 2~3위에 그쳤을 뿐, 단연 김홍도가 선두자이며 최고라는 평가다. 정병모 교수가 단원의 풍속화에 대해 몇 가지 평가기준을 들어 어떤 점에서 뛰어난지 살펴보았고, 또 중국과 일본의 작품과도 견주어보았다.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 우리는 그것을 ‘풍속화’라 부른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으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행위가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시대마다 표현방식이 다르고 유행의 정도가 다를 뿐, 풍속화가 제작되지 않은 시기는 없었다. 풍속화는 어떤 형태로든 간에 앞으로 인류와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행위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른 시기부터 지금까지 그려져 온 풍속화는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 각기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선사시대의 암각화,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의 수렵도, 조선의 삼강행실도와 경직도, 감로도 등 시대마다 유행한 주제가 다르다. 그 가운데 조선후기에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풍속화가들이 펼친 풍속화의 세계는 한국회화사에서 의미 있는 시대의 동향이다. 이 시기의 풍속화는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대나무그림이 궁중 화원들이 익혀야 할 첫 번째 주제였지만, 조선 후기에는 풍속화가 가장 많이 그려지는 주제로 부각되었다. 또한 18세기 전반 민간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가 사대부 화가들에 의하여 시작되다가 점차 민간 회화로 자리 잡았다. 더욱이 19세기에는 풍속화가 민화가 함께 발전하면서 민간 회화의 융성기를 맞이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조선후기 풍속화의 유행은 일차적으로 신분구조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궁중을 비롯한 상류계층에서 하류계층의 삶을 포용해야 할 만큼 그들의 위상이 달라졌고, 이상적인 삶보다 현실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졌다. 이로 인해 그동안 숨죽여 왔던 민간의 문화가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조선후기 풍속화를 대표하는 화가는 역시 김홍도(1745~1806 이후)이다. 풍속화에 대한 그의 명성은 이미 당대부터 높았다. 그의 작품 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강세황(1713~1791)은 그의 풍속화를 “진실로 신령스러운 마음과 슬기로운 지식으로 홀로 천고의 묘함을 깨닫지 않았으면 어찌 이처럼 할 수 있으리오”라고 평가했다. 같은 시대 서화의 뛰어난 안목인 이규상(1727~1799)은 “정신이 법도 가운데에서 자유로이 훨훨 날아다니는 경지다”라고 극찬했다. 당시 평자들의 눈에는 그의 풍속화가 신묘하고 자유로운 작품세계로 비쳤던 것이다.


‘단원풍속도첩’(보물 제 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풍속화가인 김홍도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일, 놀이, 관례, 생활상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이 25점의 화폭에 펼쳐져 있다. 그는 이 화첩에서 풍속화의 주제뿐만 아니라 기법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창출했다.


▲타작 ©
무엇보다도 이 화첩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점은 통속적인 주제를 다뤘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이 화첩을 제작하기 이전인 30대부터 여러 풍속화를 통해 에로티시즘, 신분사회의 불공평한 관계 등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시도를 계속했다. 이러한 주제들은 전통적으로 화가들이 꺼리거나 금기시 했던 것들인데, 김홍도는 이들을 자신의 화폭 속에 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화첩 가운데 ‘빨래터’를 보면, 점잖은 양반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바위 위에 숨어 빨래하는 아낙들을 훔쳐보고 있다. 잘못 망신당하기 십상인 행동을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그림 속 양반처럼 김홍도 역시 천박하다고 비판을 받을 만한 주제를 과감하게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타작’에서는 벼 낟알을 털기에 여념이 없는 일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된 노동을 감내하고 있지만, 이를 감독하는 마름은 술에 취해 아예 비스듬히 누워버렸다. 상류계층인 마름과 하류계층인 일꾼들의 불공평한 관계에 대한 풍자가 돋보인다.


아울러 우리는 이 화첩을 통해 사실주의 화풍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이전에는 인물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옷의 실루엣을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려 묘사했다. 그런데 김홍도의 풍속화에서는 그 ‘권위의 바람’이 빠지고 꾸불꾸불한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그대로의 사실적인 표현이다. 옷도 서민들의 거친 옷감에 맞게 딱딱한 선으로 묘사해 더욱 실감나게 했다. 또한 그림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화보에 보이는 도식적인 얼굴이 아니고 현실에 기반을 둔 표정 있는 얼굴이 등장한다.


▲씨름 ©
극적인 구성도 이 화첩에서 빠뜨릴 수 없는 매력이다. 별다른 배경도 없이 풍속장면만을 간략하게 부각시켜 묘사한 그림이지만, 우리는 쉽게 등장인물의 감정 속에 몰입하게 된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씨름’은 숨 가쁜 대결 속에 뜨겁게 달구어진 씨름판의 열기를 흥미롭게 표현한 작품이다. 그 와중에도 엿장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어린이를 설정한 재치는 김홍도다운 해학이다. ‘서당’에서는 종아리를 맞은 한 학생의 울음이 서당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훈장도 점잖은 체면에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찌그러져 있다. 울음과 웃음이 교차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의 풍속화에는 단순한 풍속의 묘사를 넘어 해학과 풍자가 피어난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웃음을 찾아내고 직접적인 비난보다는 간접적인 풍자로 날카로운 갈등을 풀어나갔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가치관이 그의 풍속화에서 밝게 빛난 것이다.


풍속화를 통해 보여준 김홍도의 조형세계는 신윤복, 김득신 등으로 이어지면서 조선후기 풍속화는 풍요로움을 누리게 된다. 신윤복은 김홍도에 의해 시도된 기생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를 발전시켜 여성을 그린 풍속화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그는 섬세한 필치와 예민한 감성으로 표출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통해 김홍도와 다른 세계를 구축했다. 반면 김득신은 김홍도의 그림 가운데 남성을 그린 풍속화의 영향을 받았는데, ‘파적도’에서는 역동적인 구성과 생동감 있는 인물묘사로 김홍도 못지않은 기량을 발휘했다.


‘단원풍속화첩’에 펼쳐진 사실주의는 단순히 현실을 사실적이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굳어진 권위와 위엄의 구각을 깨뜨리고 사실성의 진정한 모습을 우리에게 일깨워 줬다는 데 보다 큰 의의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김홍도가 이룩한 사실주의의 성취는 조선시대 회화의 쾌거이다.

정병모 / 경주대·미술사

필자는 동국대에서 ‘조선시대 후반기 풍속화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풍속화’, ‘韓國의美術 日本의美術’ 등의 저서가 있다.

한국 최고의 풍속화에 대한 설문결과

1위: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

2위: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

3위: 김득신의 ‘파적도’ ★★★★★★★

회화분야 추천인 11명 가운데 10명이 총 30점으로 이뤄진 신윤복의 ‘蕙園傳神帖’(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135호)을 추천했다. 하지만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김홍도 다음 가는 그림으로 평가했다. 김득신의 ‘파적도’도 7명이 추천했는데, 이 역시 김홍도 다음으로, 그리고 신윤복 보다 앞선다고 평가한 이가 간혹 있긴 했지만, 대부분 신윤복 다음 가는 이로 추천을 했다. 


신윤복의 화첩에 대해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는 “신윤복의 인물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감각적이며, 상황은 구체적이어서 조선후기를 곧장 만나게 한다. 조선 최고의 풍속화일 뿐 아니라 조선 최고의 그림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최고의 풍속화로 평가했다. 특히 김홍도와 견주어서는 “임금의 총애를 받고 출세했던 김홍도와 달리 여항에서 떠돌며 서성이던, 그러기에 서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기록할 수 있었던 이방인 화가”로 달리 보았다. 특히 화첩가운데 ‘단오풍정’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겨졌지만, ‘연당야유도’, ‘월하정인’, ‘목욕’, ‘청금상련도’가 가장 좋다고 추천한 이도 있었다.  


▲김득신의 파적도 ©

한적한 농가에서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와 당황해 날개치는 어미닭,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병아리, 병아리를 안 빼앗기려 하는 주인 부부의 거의 본능적인 모습 등을 실감나게 그린 김득신의 ‘파적도’(간송미술관 소장, 18세기. 종이 바탕에 담채. 22.5×27.1cm)는 구도면에서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화면 전체에 해학적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외에도 윤두서의 가전화첩 중 ‘나물캐는 여인’과 ‘선거도’, 조영석의 사제첩 중 ‘바느질’, 강희언의 사인삼경 중 ‘서화휘호’, 유숙의 ‘대쾌도’, 신한평의 ‘자모육아’, ‘무진진찬도병’ 등이 조선의 풍속화 중 주목할만한 작품으로 꼽혔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추천해주신 분들: 김정희 원광대, 박도화 문화재청, 박은순 덕성여대, 이내옥 부여박물관장, 이원복 광주박물관장, 이태호 명지대, 전호태 울산대, 정병모 경주대, 조선미 성균관대, 한정희 홍익대,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 이상 총 11명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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