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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계급·탈진영 지식인이 세상 바꾼다
탈계급·탈진영 지식인이 세상 바꾼다
  • 최승우
  • 승인 2022.10.28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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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㉝_카를 만하임
카를 만하임은 역동적 종합을 통해 최대한 보편적 진리에 가까운 지식을 개진하는 것을 지식인의 주된 책무로 규정했다.  사진=괴테대

오랜 기간, 민주화 투쟁을 통해 한국 사회는 ‘실질적 민주화’를 구현하는 과정에 들어섰다. 하지만 ‘촛불 정권’ 하에서 빚어진 ‘진영논리’의 전일적 확산과 그에 따른 첨예한 당파적 대립은 사회 전반을 극단적인 대결 및 투쟁의 상태로 내몰고 있다. 

진영논리란 구성원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의 이념 혹은 이해관계의 ‘부합’ 여부에 따라 ‘규범적 정당성’을 판별하는 논리이다. 그에 따라 합치하면 정의고, 그렇지 않으면 적폐요 청산의 대상이다. 이렇듯 자의적인 ‘힘의 논리’에 다름 아닌 진영논리는, 정당함과 부당함을 따지는 ‘도덕 판단의 보편적 척도’로서 그 역할을 결코 수행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진영논리란 지배세력의 기득권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시민들을 도구적으로 이용하고자 획책된, ‘탈(脫)진실적 오인의 메커니즘’이자 ‘정치 공학적 술수’에 다름 아니다. 

한데 이 대목에서 주목할 점은,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이 그간 보여준 무책임적인 행태이다. 곧 그들 중 일부는 진영논리를 확대·심화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는가 하면, 진영논리에 기초한 ‘정치의 팬덤화’ 현상을 옹호했다. 또 다른 이들은 강성 지지층의 신상 털기 식의 무차별적 폭력을 의식해 방관·외면하기 일쑤였으며, 다수의 비판적 지식인들 또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 토대가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진영논리에 의거해 적과 동지를 구분해 상대 진영의 척결을 주창하는 공멸의 정치가 난무하는 현실, 특히 이러한 사태를 초래하는 데 비판적 지식인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점과 관련해 카를 만하임(1893~1947)의 주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개진된 지식인론(論)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적지 않다. 

만하임이 활약하던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은, 우리의 현실과 유사하게 양 극단의 이념을 비롯한 수다한 이데올로기들이 끊임없이 충돌 쟁패하던 이념적 카오스의 시기였다. 만하임은 이를 넘어서기 위한 방안으로, 지식인의 역할에 관한 새로운 논변을 제시했다. 

즉 상이한 이해관계를 지닌 적대적 집단들이 각자의 의도의 관철을 위해 무차별적인 정치적·이념적 투쟁을 벌여나가는 사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립적 집단들과 그 구성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인 바, 이는 지식인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실행케 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만하임은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이 견지하고 있던 계급적 당파성을 신랄히 비판하면서, 성찰적 자기비판 능력에 의거해 자신이 속한 계급적 관점에서 벗어나 일체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역동적 종합을 통해 최대한 보편적 진리에 가까운 지식, 즉 종합 지식을 개진하는 것을 지식인의 주된 책무로 규정했다. 

이러한 논변의 기저에는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제시된 새로운 지식인상(像), 곧 ‘비교적 자유로이 부동하는 지식인 층’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특정 계급이나 진영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이 행동하는 존재야말로 지식인 계층이 갖춰야할 필수적 자격 조건에 다름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하임의 지식인론은,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가운데 본질적 실체를 통찰하고 이를 일반 시민들에게 제시하는 한편, 진영논리에 물든 시민들을 각성시켜 오인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권력에 예속된 노예적 인간’이 아닌, 자주적 존재로서 살아가게끔 계몽시킬 책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 땅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이로부터 비판적 지식인에게는, 일반 시민들을 각성·계도시켜야 할 계몽적 리더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 만큼, 그에 걸맞은 리더십을 지녀야만 하는바, 진영논리의 철폐라는 본연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위한 전제로서 자기 비판적·성찰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이어 상실된 신뢰를 시민들로부터 다시금 회복하기 위한, 동시에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상호 수평적 관계 속에서 지식인의 책무를 이행해 나가기 위한 것으로서 상호 신뢰적·존중적 리더십을 지녀야 한다. 

그런 연후에,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실체적 진실을 인식할 수 있게끔 시민들을 각성·교화시키는 계몽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자격 조건으로서 계몽적 리더십을 견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선우현 청주교대 교수·윤리교육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사회비판과 정치적 실천』, 『우리시대의 북한철학』, 『위기시대의 사회철학』, 『한국사회의 현실과 사회철학』, 『자생적 철학체계로서 인간중심철학』, 『홉스의 리바이어던』, 『평등』, 『도덕 판단의 보편적 잣대는 존재하는가』, 『한반도의 분단, 평화, 통일 그리고 민족』(기획·편집),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인가』(기획·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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