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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세월은 끝났다" …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서
"갈등의 세월은 끝났다" …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4.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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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임여교수, 4人 4色

▲배은경(서울대 사회학) ©
“내가 뭐 특이하다고 인터뷰씩이나 해요?” 신임교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려는 듯한 배은경 교수(39세․여,사진)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다정하다. 그래서, 한 번 더 부탁할 수 있게 만든다. ‘거절’의 뜻을 담아 이루어진 대화 속에서 흘러나온 그의 이야기에는 ‘여성 연구자’로서의 애로사항이 녹아있다. 2004년 2월 박사학위를 받은 배 교수는 학위 받은 지 2년 만에 서울대 사회학과 조교수에 임용됐다. 빠른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것이 1993년. 박사학위 받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 배 교수는 “정치학, 사회학 등 모든 학문 분야가 그렇듯, 여성학이 체계를 잡고 여성적 관점이 인정받기까지 여성연구자가 겪는 갈등이 많다”고 설명한다. 소속 분과 학문의 남성중심성을 완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것.

        “분과학문에서 여성적 관점 인정받기가 어려워”

일․가정 양립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출산 후 아이를 조금 키운 후에 박사 과정에 입학한 배 교수는 “시간강사, 연구원 생활 등 ‘유동적’ 생활을 하다보니 육아, 육아와 관련한 협상 등이 모두 내몫이었다”며 “덕분에 내가 발표를 맡았다거나 해서 꼭 가야하는 심포지엄 외에 가고 싶은 심포지엄을 마음대로 가지 못했던 점 등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한 “3살 때부터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냈다”며 “맡겨놓고도 항상 불안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배 교수는 더 많은 여성연구자가 우수한 연구능력을 갖추려면, 대학에도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탁아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영민(고려대 언론학) ©
윤영민 교수(42세)는 이번에 고려대 언론학부에 임용됐다. 지금은 ‘PR론’과 ‘홍보세미나’ 두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윤 교수는 학위와 함께 실무 경력을 갖춘 케이스다. 세계적 PR회사인 ‘버슨 마스텔러’에서 7년 정도 일하면서 클라이언트 쪽에서 주는 정보만 가지고 분석하다보니 스스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에 갈증을 느꼈다고 윤 교수는 말한다. 또한, 국내 홍보학 전공 선생님들이 실무 경력이 없다는 점에도 착안했다. ‘홍보학’의 블루오션을 찾은 것. 윤 교수가 쉽게 미 시라큐스대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다.

고려대는 이번에 60명의 신임 교수 중 4명만 여교수로 임용했다. 그 중 한 명인 윤 교수에게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물었더니 “언론학부나 광고학 쪽에 여학생은 늘어나는데 여선생님이 안 계시다보니 학교 측에서도 필요로 하는 분위기여서 적응에 어려움이 없도록 많이 배려하고, 재임용이 남아있어 신임교수의 행정적 부담도 줄여주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고려대가 여성배타적이라고 미리 겁먹는 여선생님들이 계신데 부닥쳐보면 그렇지도 않다”고도 덧붙였다. ‘혼자’가 갖는 대표성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없겠냐는 질문에 윤 교수는 “남 의식하지 않고 내 좋은 대로 살되, 비합리적 행동만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여교수. ‘당차고 자유로운 여성’으로서 여학생들에게 긍정적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학생들에게 긍정적 롤모델 되고 싶다

▲장혜영(아주대 화학) ©
장혜영 교수는 29세라는 빠른 나이에 아주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에서 학․석사를 마친 후 1년간 유급조교 생활을 하다가 유기 촉매 부분을 연구하고 싶어 미 텍사스대로 유학을 결정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2005년 9월부터 포닥생활을 하던 중 아주대에 임용됐다. 

장 교수는 나이가 젊은 만큼 대학원생이나 학생에 대한 공감의 정도가 높다. “대학원생을 받으면 본인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많이 주고, 독립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말한다. 또한 “진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겠다”는 것도 그가 한 결심이다. “외국에 가보니 할 수 있는 일이나 학문 분야가 너무 다양했다”며 “먼저 경험한 만큼, 학생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돕겠다”며 ‘친구 같은 선생님’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함정임(동아대 문예창작) ©
동아대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소설가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기회를 얻었다. ‘춘하추동’ ‘여름정원’ 등의 소설을 쓴 소설가 함정임 교수가 2006년 상반기 동아대 문창과에 임용된 것이다. 함 교수는 추계예대 시간강사 생활을 할 때 “‘문학적 열정’을 지닌 학생들의 눈망울이 기억에 남았다”며 “학문의 장에 문단의 현장감을 접목시켜 서로 공유하는 장을 만들어야 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 이론을 강의할 때도 현대적 작품 하나하나에서 실례를 들어줄 수 있고, 창작자로서의 고민들을 생동감있게 전해줄 수 있음에 큰 의미를 뒀다.

교수로서 주어지는 각종 행정 업무에 대해서도 그는 “소설가로서,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어 그것 또한 소중한 기회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위한 ‘취업 세미나’, ‘신임교수 워크샵’ 등 일견 소설가와 멀어 보이는 일들도 함 교수는 생활의 현장으로서 받아들이고 경험으로 여겼다. 올 여름 잔혹극 창시자 앙토넹 아르토의 궤적을 좇는 멕시코 여행을 계획 중인 함 교수의 생활은 강의와 창작과 여가가 ‘삼위일체’를 이뤄 작품으로 재현될 듯 보였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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