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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호 연결된 정보적 유기체 ‘인포그’
우리는 상호 연결된 정보적 유기체 ‘인포그’
  • 석기용
  • 승인 2022.10.26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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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정보철학 입문』 루치아노 플로리디 지음 | 석기용 옮김 | 필로소픽 | 228쪽

정보로 이루어진 총체적 환경 ‘인포스피어’ 공유
온·오프라인의 경계 사라지며 정보 공간이 실재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현재는 영국 옥스퍼드대와 이탈리아의 볼로냐대에서 교수직을 겸직하며 ‘정보 철학’이라고 하는 ‘매우 낯선’ 분야를 ‘대단히 파격적으로’ 개척하고 있는 현대 철학자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면 ‘정보 철학’은 정보 처리, 표상 시스템과 의식, 컴퓨터 과학, 정보 과학 및 기술 등과 관련된 주제들을 연구하는 철학 분과로 소개되어 있다. 확실히 이 정도면 정보 철학은 3천년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한 번도 다뤄진 적이 없는 새롭고 매우 낯선 분야의 철학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새롭고 낯선, 이를테면 뇌철학, 신경철학, 실험철학 등과 같은 다른 철학 분과들과 비교할 때 이 정보 철학에는 단지 그러한 새롭고 낯섦을 넘어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면모가 있다. 플로리디에 따르면, 정보 철학은 이제 철학에서 새로이 제일철학의 지위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제일철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은 단지 감각을 통해 접하는 일상의 대상들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영역에 존재하는 지적 직관의 대상들까지 논의에 담아내는, 한마디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이성적 탐구라는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플로리디에 따르면, 정보 철학이 바로 그런 성격을 지닌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 이상이다. 플로리디는 2011년에 첫 출간한 『정보 철학(The Philosophy of Information)』을 필두로 어째서 정보 철학이 제일철학으로 불려 마땅한지 파헤치는 연작 저술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아직 완결되지 못한 이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플로리디는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정치학, 미학까지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 철학 체계로서 정보 철학의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2010년에 ‘옥스퍼드 출판사’의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된 본서의 원서 『In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은 그 총체적 철학 체계 안으로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프롤레고메나(학문에 대한 서설)라고 할 수 있다.

플로리디는 본서에서 20세기 정보 혁명의 결과로 “많은 측면에서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자라기보다 상호 연결된 정보적 유기체 즉 인포그(inforg)로서 생물학적 행위자들 및 공학적 인공물들과 함께 궁극적으로 정보로 이루어진 총체적 환경 즉 인포스피어(inforsphere)를 공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가까운 미래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 자체가 사라질” 것이며 그런 “인포스피어는 다른 모든 공간을 점점 흡수해가고” 있고, 그래서 “그런 인포스피어가 더는 ‘저기’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게 될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보 공간은 더는 필요에 따라 로그인하고 로그아웃 하는 부수적 가상 환경 같은 것이 아니게 될 것이며, 결국은 “인포스피어가 세계 그 자체가 될 것이고, …… 마지막 단계에서 ‘인포스피어’라는 말은 정보 공간을 지칭하는 하나의 방식에서 그냥 ‘실재(實在)’와의 동의어로 의미가 바뀌어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정보 철학이 곧 제일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제 우리가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 결정적인 열쇠는 정보다.

 

정보 철학이 곧 제일철학이 될 수 있을까. 현대 정보사회는 정보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역자는 2년 전 을지대 김재희 교수가 주도한 한국연구재단 연구 과제 「인포스피어 휴머니티를 위한 정보 철학」 프로젝트에 공동 연구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비로소 정보 철학이라는 신세계를 접하게 되었고, 그런 연구의 작은 결실로서 이 역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연구자들이 번역 초고를 함께 읽고 여러 가지로 유익한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정도의 성과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간 정보를 다룬 책들이야 넘치게 많았지만, 본격적인 ‘정보 철학’ 관련 저서로는 아마도 본서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일 것이다. 부디 이 책이 국내 철학계의 정보 철학 관련 논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석기용
성신여대 교수·언어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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