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최고참인 권영자 출판과장의 말에 따르면 “한푼”의 지원금도 없다. 독서를 강조하는 정운찬 총장 이후에 사업이 커진 것 같다는 질문에도 “여러모로 마음을 써주시고, 얼마 전 펴낸‘권장도서해제집’은 6천부나 사주셨지만 그게 전부”라고 잘라 말한다. 재정적 분리를 강조하는 그는 그동안 “서울대출판부는 그냥 마음 편하게 책만 내면 되지 않나”라는 오해를 어지간히 많이 받은 눈치였다.
하지만 서울대출판부의 경쟁력은 서울대와 따로 또 같이 논해야 한다. 서울대 교수들로 이뤄진 출판위원회, 전체 책의 80%를 육박하는 서울대 저자들, 전문가들로 그때 그때 꾸려지는 리뷰위원회, 4년 임기로 로테이션 되는 출판부장 등으로 볼 때 서울대의 육체는 출판부에 그대로 연장돼 있는 것이다.
▲권영자 과장 © |
서울대출판부가 현재의 조직과 규모를 갖추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난 1961년 교내인쇄소로 출발해 어언 45년의 역사인데, 78년 출판부로 전환한 것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역사는 이제 30년 남짓이다. 그간 동아시아학술연구총서, 미국학총서, 한국학연구시리즈, 한국의 탐구 시리즈, 한국사연구총서, 영미문학주석본총서, 학문문화연구총서, 인문학연구총서,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 사회발전연구총서, 사회과학총서 등 ‘총서공화국’으로 면모를 갖추면서 1천8백종을 펴냈다. 이 중 1천종이 살아서 움직이니 생존율 60%다. 일반 단행본출판사 도서생존율을 약간 윗도는 수준이다.
그 이유는 좋게 말하면 지속적으로 읽힐만한 책을 만들기 때문이지만, 엄격히 보자면 교재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대출판부가 자체 집계한 베스트셀러 상위 24개 도서에서 교재성 개론서는 아무리 좁게 봐도 20종이고 넓게 보면 23종이다. 역시 교재가 서울대출판부를 먹여살리고 있는 셈이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한국사 특강’(국사학과, 1990)으로 9만5천여부가 팔렸다. 그 다음은 ‘문화인류학개론’(한상복 외, 1985)이 7만4천부, ‘지역사회복지론’(최일섭 외, 1985)이 7만2천부다. 베스트셀러 중 가장 어린 책은 1998년에 나와 23위에 랭크된 ‘학교수학의 교육적 기초’(우정호)로 1만5천5백부가 팔렸다.
스테디셀러 목록을 보면 ‘과학은 얼마나’(홍성욱), ‘경제위기의 사회학’(김은미·장덕진), ‘고통받는 인간’, ‘주체개념의 비판’ 등 학술적 이슈와 닿아있는 내실있는 책들, ‘논어’, ‘당시선’, ‘프로이트-꿈의 해석’ 등 고전들, ‘사회과학 글쓰기’, ‘논문작성법’ 등 글쓰기 교재가 꾸준히 나가고 있었다.
최근 서울대출판부는 ‘역주 오륜행실도’(한국학공동연구총서), ‘삼국과 통일신라의 불교사상’(한국학자료총서), ‘무과총요 연구’·‘한국 근대과학 형성과정 자료’(한국학연구총서),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삼국사기의 현대적 이해’(한국의탐구) 등 사료비평과 연구사 검토를 통한 한국학 관련 고급 데이터베이스에 전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권영자 과장은 출판부에서 의욕적으로 기획해 3년 전부터 총 1백50종 목록을 확정하고 모두 청탁돼 있지만 좀처럼 원고입수가 안된다고 상황을 전한다. 얼마나 공들인 玉槁들이 앞으로 나올 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서울대출판부는 직원 28명에 연매출이 30억에 달하는 국내 대학출판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화여대·전남대출판부보다 매출이 3배 정도 많다. 올해부터는 학교로부터 “약간”씩 지원도 받게 돼 한국학총서에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하지만 서울대출판부에 대한 교수들의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홍보에 너무 무신경하다는 것은 앞다퉈 입을 모으는 부분이다. 울산대의 한 교수는 “내가 직접 보도자료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도, 알아서 하겠다고 거절하더니 나중에 홍보자료를 보니 책의 핵심을 제대로 담지 못한 몇줄 기사가 전부더라”며 지적한다. 또 다른 교수는 “교정지를 한번 보고 재교정지가 오는데까지 4~5개월이 걸리더라”면서 너무 느리다고 불만을 표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교정은 꼼꼼히 보더라”는 교수들의 말과 함께 고려해볼 때 큰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은혜 기자 thireen@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