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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이어령의 질문, “하늘은 파란데 ‘천자문’은 왜 검다고 하는가?”
소년 이어령의 질문, “하늘은 파란데 ‘천자문’은 왜 검다고 하는가?”
  • 유무수
  • 승인 2022.10.21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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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너 어디로 가니』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340쪽

책의 힘으로 일제의 강제적인 사상 주입 벗어나
불행도 상상·창조력 더하면 행복된다는 걸 깨우쳐

송가인 가수는 트롯 경연에서 남들이 “ㅇㅇㅇ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할 때, ‘어떻게 하면 신선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고, “송가인이어라”라는 답을 찾아냈다. 질문하지 않았다면 창조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답은 없었을 것이다. 이어령 저자(1933~2022)가 이 책에서 특별히 강조한 것은 ‘질문의 정신’이다.

 

소년 이어령은 전근대로부터 근대로 전환되는 교육 시스템 속에 ‘어둠’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조선시대에는 서당이 기초적인 교육을 실시한 사설 초등교육기관이었다. 저자가 소학교에 입학하기 전 형의 손에 이끌려 공부하러 갔던 서당에는 선비가 앉아 있었다. 옛날 지식의 첫 관문은 ‘천자문’이었다. 소년 이어령은 천자문의 첫 대목, “하늘 천(天), 땅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을 접했을 때 ‘왜 하늘은 파란데도 검다고 하는가?’라고 질문을 제기했다. 훈장 선생님은 화부터 냈다. 

이어령이 1940년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소학교’였으나 1941년에 ‘국민학교령’의 칙령이 공포되면서 ‘국민학교’로 변경됐다. 조선총독부는 한반도를 중일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일본과의 동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민족교육금지령이 내려졌고, ‘일본어 상용’ 정책이 추진됐다. 학교는 황국신민을 훈련시키는 장소로 규정됐다. 교사는 도장이 찍힌 딱지를 나눠주면서 한국어를 쓰면 딱지를 빼앗도록 지시했다. 표를 많이 빼앗으면 주말마다 상을 주고 잃은 아이들은 변소청소 벌칙을 받았다. 일본 말 서툰 아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석회나 진흙처럼 교육에 의해 변형시킬 수 있는 존재로 규정됐다. 거푸집으로서의 교육이었다. 어린아이들 머릿속에 일제가 원하는 지식과 규범을 집어넣는 게 식민지 교육이었다. 학교에서는 동요 대신 군가를 가르쳤다. 일본 군가는 신나는 행진곡 풍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죽음을 노래했다. 천황은 우리를 황국신민으로 낳아주신 아버지요. 우리는 그 천황의 갓난아이라고 했다. 그런 고로 천황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충효의 길이라는 군가를 열 살배기의 아이들이 배웠던 것이다.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발달을 소망하는 인격을 무시하고 도구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외부의 강요는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저항의지를 표출했다. “난도아이나 푸이푸이푸이토 창고수”라는 말이 아이들 입을 타고 전국으로 나돌았다. 이는 아무 의미 없는 해리포터 같은 주문일 뿐이었다. 군가도 일제가 주입시킨 대로만 부르지 않고 “어젯밤에 산고양이가 내 긴타마(남성의 심벌)를 떼어갔다네”처럼 장난스러운 가사로 바꿔 부르곤 했다. 

저자는 일제에 의한 강압과 혼란의 시기에 일제가 원하는 대로 세뇌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제가 주입시키려 한 사상과 다른 사상을 표현하는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모르는 부분을 메우려 노력하면서 독창성과 상상력을 기를 수 있었다. “불행도 상상력과 창조력을 더하면 행복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트라우마를 딛고 식민지에서 당한 것도 어떻게든 거름으로 삼아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서당에서는 훈장님이 가르치는 대로 천자문을 달달 외우되 빨리 외울수록 신동 대우를 했다. 이어령은 IT 컴퓨터 시대에  기계처럼 암기하는 것은 힘을 잃는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시대”이다. 내비게이션을 연구한 유대인 학자 아이작 라비의 어머니는 학교수업을 마치고 온 아들에게 “얘야, 오늘은 선생님께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질문하곤 했다. 전통, 권위, 관행, 유행에 매몰되지 말고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단서에 다시 의문을 품고, 더 깊은 진실을 찾아서 묻고 따져야 한다. 소년 이어령이 천자문에서 품었던 질문은 나중에 『도덕경』 1장과 6장에 표현된 ‘검을 현’ 자에 이르렀을 때 발견의 기쁨으로 되돌아왔고 사상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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