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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며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라
고뇌하며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라
  • 김병희
  • 승인 2022.10.21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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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⑨ 김성동의 『만다라』

 

한국문학사의 『만다라』 광고 (동아일보, 1979. 11. 12.)

소설가 김성동 선생이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9월 25일 향년 75세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병 속에 갇혀있던 새가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갔구나 싶었다. 고교 시절, 창작 동아리 ‘문성회’ 친구들과 선생님의 소설 『만다라』에 등장하는 법운스님과 지산스님의 선택지를 놓고 격론을 벌였던 순간도 떠올랐다. 불교계에 널리 알려진 화두공안(話頭公案)인 ‘병 속의 새’는 소설을 끌어가는 상징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그 대목은 이렇다. 

“여기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깊고 넓어지는 병이 있다. 남자가 조그만 새 한 마리를 집어넣고 키웠다. 이제 그만 새를 꺼내야겠는데 그동안 커서 나오지를 않는다. 병을 깨뜨려서도 새를 다치게 해서도 안 된다. 자, 어떻게 하면 새를 꺼낼 수 있을까?” 까까머리 고교생들이 인생에 대해 뭘 알았으랴만 출가한지 6년째 ‘병 속의 새’라는 화두를 풀지 못한 수도승 법운이 파계승 지산을 만나고부터 겪는 심경의 변화를 그린 소설을 도마 위에 올렸다. 지산의 파계가 원효대사처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라는 극단적 주장도 난무했었다.

한국문학사의 『만다라(曼陀羅)』 광고를 살펴보자(동아일보, 1979. 11. 12.). 광고에서는 카피를 세로쓰기와 가로쓰기로 교차해 흥미롭게 배치했다. “‘한국문학’ 백만원 신인상 수상작”이란 카피와 책 제목은 물론 “80년대를 향하여 던지는 이 돌멩이. 이 한권으로 70년대의 장을 덮는다.”라는 헤드라인을 모두 세로로 배치해, 1980년대를 여는 새 시대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가로쓰기는 질문형 카피로 시작했다. “수상작이 발표되자 왜 전문단(全文壇)이 폭발했는가? 왜 다시 장편으로 완성시켜야 했는가?” 

청년 작가의 사진 밑에는 보디카피를 배치했다. “‘병속의 새’를 꺼낼 수는 없는가? 끝없는 삶의 질문을 던지며 마침내 우리 모두를 파괴하고 70년대를 침몰시키는 소설 예술의 극치(極致)!!” 이어서 전문가들의 평을 붙였다. 『만다라』에 대해 소설가 유주현은 “많은 독자를 사로잡을만한 재미와 주제의식을 담은 소설이다”라고, 소설가 최인훈은 “서양문학에서 기독교가 하고 있는 것 같은 미학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재로써 불교적 전통이 활용되는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즐거움까지 준다”라고, 평론가 홍기삼은 “신선한 감수성과 인생에 대한 깊고도 치열한 대결의 자세를 통해 개성 있는 신인의 탄생을 확인케 한다”라고 평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형 4·6판의 호화 양장본에 책값은 1,800원이었다. 후속 광고의 카피도 앞 광고에서와 유사한데,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며 이런 내용을 추가했다(동아일보, 1979. 11. 21.). “싣달타 이후의 불교적 비의(秘義)의 소설”, “70년대가 만든 신인 장편문학의 백미”, “영혼과 육신을 불지르는 통렬한 감성”, “수상작이 발표되자 문단 매스콤 폭발.” 만다라는 진실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불교의 상징물인데, 문단과 언론에서는 깨달음이란 주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소설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문학> 신인상의 1978년 당선작인 「만다라」는 원래 중편소설이었다. 이를 다시 장편으로 개작해 1979년에 출간한 『만다라』는 같은 해에 나온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1979)과 함께 종교적 주제를 다룬 베스트셀러 소설로 떠올랐다. 불교와 기독교를 소재로 쓴 두 소설은 종교적 대상은 달랐지만 진정한 깨달음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점을 독자에게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1981)에서도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제하고 깨닫고자 몸부림 친 법운(안성기 분)과 지산(전무송 분)의 대결을 통해 삶의 번뇌를 형상화했다.

구도(求道)를 위해 수행하는 법운의 방황과 고뇌라는 소설의 핵심 주제를 통해 불교계와 한국 사회의 위선적 면모를 고발한 소설이었다. 법운과 지산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진리에 이르는 길을 서로에게 묻는다. 소설을 읽다 보면 진정한 깨달음이란 지식과 무관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저마다 자기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소설은 경제개발의 성과에 도취해 위선도 능력이며 처세라는 인식이 확산되던 197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면서 저마다 고뇌하며 자기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라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만다라』 초판의 표지 (1979)

구도소설의 전형성을 갖춘 소설에서는 ‘병속의 새’라는 어려운 화두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면 참구(參究: 끓임 없이 진리를 구함)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소설의 결말은 이렇다. 절망과 고독을 이기지 못한 지산은 결국 자살하고, 지산의 다비장(茶毘葬)을 치룬 법운은 창녀와 동침한 이튿날 새벽에 산으로 가는 차표를 찢어버리고 저잣거리로 힘껏 달려가 환속한다.

그런데도 법운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환속의 이유가 더 궁금해지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몽환적 문체와 이야기 구성력 때문이었으리라. 삼가 김성동 선생의 명복을 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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