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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와 원전
에너지 위기와 원전
  • 안상준
  • 승인 2022.10.17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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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안상준 논설위원 / 국립대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논설위원

2022년 인류는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불안해하고, 에너지 수급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유럽은 당장 올겨울 추위에 대비한 에너지 확보에 비상이 걸렸고, 전문가들은 내년까지 비상상황이 이어지리라고 우울하게 전망한다. “이번 겨울을 안정적으로 나기 위해서 만일을 대비해 핵발전소 2기를 ‘예비전력원’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는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독일대사의 인터뷰(<한겨레>)를 보면 다급한 현재 상황이 생생하게 와 닿는다. 원래 올해 말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공표했던 독일 정부의 고뇌가 한껏 묻어난다. 

그러나 원전의 부활을 들먹이며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라고 주장하는 원전 찬성론자에게 오해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듯, 대사는 “‘원전 폐쇄’라는 대전제에는 변화가 없다”고 쐐기를 박으며,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공고하게 형성돼 있음을 강조한다. 

이 사회적 합의는 오랜 시간 가혹한 진통을 동반했고, 그와 관련하여 필자에게 각인된 독일 지명이 하나 있다. 바로 고어레벤(Gorleben)이다. 독일 북부의 작은 마을 고어레벤은 1980년대 초 이래 방사능폐기물처리장(방폐장) 설치로 이름이 알려졌다. 주기적으로 방사능폐기물 열차가 운행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목숨을 걸고 선로에 누워 인간띠를 만드는 시위대의 모습이 독일의 주요 방송사 뉴스 화면을 장식했다. 필사적이고 전투적인 저항 장면에 몹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2020년 9월 28일에 고어레벤의 방폐장은 폐쇄되었다고 한다. “독일은 지난 50년 동안 핵폐기물을 아주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과학계는 (핵폐기물을 어디에 보관해도) 100% 안전할 수는 없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를 통해) 핵에너지는 장기적으로 믿을 만한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주한독일대사의 발언에서 원전 종식을 위하여 고어레벤 시위대가 벌인 정의로운 투쟁의 위대한 승리가 떠오른다. 

고어레벤의 역사적 승리는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에너지원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촉매제였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류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에너지 원자력의 폐기를 주장하는 한편, 독일 사회는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지속 가능한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전념했다. 시민의 정의로운 항거와 정부의 일관된 정책은 지난 30년간 독일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이제 독일 사회는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현재 47∼48% 정도를 달성한 상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선 수치다.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를 준비하는 독일에 비해 우리 사회는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정책 면에서 소극적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6.7%(2021년 11월 기준)에 불과하다.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글로벌 캠페인)은 기업의 생존이 걸린 시급한 과제이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에 관계자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글래스고우 기후회의 의결에 따라 우리 정부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상향 제시했지만, 시민들이 목표달성을 위한 정책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엄청난 비용이 드는 정책은 고사하고 일회용컵보증금제의 시행마저 무력하게 만드는 환경부를 보며 체념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원전 찬성론자들은 여전히 원전의 확대를 주창한다. 백번 양보해서 원전의 효율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방사능폐기물 처리에 관한 합리적이고 영구적인 대책이 철저히 마련되어야 한다. 아니, 독일의 사례를 참고하여 원전 사용은 여기서 그쳐야 마땅하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친환경 에너지와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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