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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연구 부족'의 산을 넘으며
'선행연구 부족'의 산을 넘으며
  • 송지혜
  • 승인 2022.10.18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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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송지혜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구글 학술검색 페이지에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라는 아이작 뉴턴의 명언이 적혀있다. 연구자에게 거인은 내가 가는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이다. 만약 거인의 어깨에 오른다면 분명 지금의 자리보다 더 높이, 멀리 세상을 내다볼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조용한 위로가 찾아온다. 나의 이 무수한 고민과 시행착오를 그들도 겪었으리라. 그러나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걷다가 결국에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닦았으리라.

나는 수료를 앞둔 4학기 차 문학 전공 박사과정생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정작 나는 학문에 대한 고민에 있어 학문 그 자체보다는 ‘학위’에 집중한 비루한 고민이 8할이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 소심하게 고백해본다. 이 시대에 ‘졸업’이 담보해주는 것은 특별히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맹목적인 생각을 주로 했던 것 같다. 눈앞에 놓인 이수, 수료, 졸업과 같은 숙제를 영혼 없이 차례로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1차원적인 생각. 어쩌면 그 일들은 씹지도 않고 짚어 삼키듯 다뤄지고, 치러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디지털이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현대인이라면 대다수 알고 있다. 최근 나의 연구는 그런 것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메타버스’라는 가상 현실 속 새로운 공간은 사람들 사이에 대면의 상황이 익숙하던 시절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서로 얼굴을 직접 만나서 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자, 사람들은 그 공간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결국 그런 호기심은 사람들에게 현실이 아닌 ‘또 다른 현실’에서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얼마 전 함께 연구의 길을 걷는 동료와 「몰입 ‧창의성 공간 메타버스에서의 문학콘텐츠 : ‘제페토 드라마’를 중심으로」를 쓴 이유다.

상투적인 말 같아도 연구는 어떠한 명목과 명분이 아닌, 진정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으로 할 때 연구자의 머릿속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이번 연구 주제는 아직 선행연구가 많이 없는 것으로 비교적 신진 연구로 다룰만한 것이었다. 막상 그럴듯한 연구의 방향이라고 공동 연구자와 함께 확신에 가까운 생각에서 시작은 했지만, 이 연구가 과연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게 맞을지 때때로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결과는 ‘수정 후 게재’. 주변인에게 겉으로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으나, 속으로는 내심 ‘나의 고민은 관념 덩어리가 아닌 연구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었구나’ 하는 마음에 오랜만에 크게 고갤 들어 하늘을 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앞서 고백한 나의 1차원적 고민은 오늘날 여러 학과의 과정생으로 살아가는 학생들 다수의 고민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그런 목소리를 종종 듣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과정생의 이런 고민은 혼자 앓다 끝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문과’는 학생들의 공동연구 빈도가 높지 않다. 이런 이유에는 연구 주제의 특성상 독립적인 연구가 우선인 상황도 있으며, 이공계와 같은 전일제 공동 연구실과는 다른 독립적 연구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구실을 거점으로 하는 이공계는 대체로 공동으로 수행하는 과제가 존재하므로, 그것을 토대로 결과물을 낼 때 연구 실적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 물론 여기서 그런 생태계의 차이점이 가져오는 연구자의 환경적 한계를 따져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의 차이로 인해 연구 활동을 자유롭게 펼쳐보지도 못한 채 시작부터 소심해지는 연구자의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마음을 남겨본다.

연구의 시작은 혼자 걷는 길이지만, 앞서 얘기했듯 거인의 어깨에 올라설 수도 있고, 가끔 누구와 함께 걷는 길도 있다. 기나긴 길에서 때론 홀로 걷다 잠시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면 긴 여정에서 하나의 기쁨이자 의미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아직 선행연구가 부족한 연구 주제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여러 밤을 고민하며 연구한 동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송지혜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충남대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석사 학위까지 미디어학, 영상학, 미학을 공부했으나 시가 좋아 2015년부터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순수문학 외에도 문학의 경계 밖에서도 문학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마음에 품고 ‘문학 콘텐츠’를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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