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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탄광 속 카나리아’, 설득·대화로 대중을 계몽
지식인은 ‘탄광 속 카나리아’, 설득·대화로 대중을 계몽
  • 선우현
  • 승인 2022.10.10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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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㉚_선우현 청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사르트르는 지식인의 고뇌와 성찰을 담은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펴내기도 했다. 사진=위키피디아

전통적으로 견지돼 온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상당한 불신과 회의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는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규범적 정당성이 결여된 통치 권력을 앞장서 옹호하는 이념적 조력자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사실과 관련돼 있다. 보편타당한 관점에서 특정 사태의 규범적 타당성 여부를 판별한 후, 정당한 입장을 대변하고 이를 탄압하는 세력에 맞서 비판적 저항을 시도해야 할, 지식인의 책무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이었을까? 만하임에서 그람시, 사르트르를 거쳐 부르디외와 촘스키에 이르는, ‘근대론’의 관점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조망한 주요 사상가들의 ‘근대적 지식인론’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핵심 논지의 하나는, 지식인은 ‘당파주의’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맑스주의 지식인들이 고수하고 있던 편협한 당파성을 비판하면서, 특정한 계급적 관점에서 벗어나 일체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을 지식인의 책무로 규정한 만하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맑스주의 사상가인 그람시도, 사적 이익에 토대를 둔 ‘협애한’ 당파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날 것을 새로운 지식인상을 통해 주문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유기적 지식인’은, 억압 받는 노동자 계급 편에 서서 지배 계급의 착취에 맞서 저항적 투쟁을 수행할 역할을 부여받지만, 단지 피지배 계급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노동자 계급을 옹호하는 ‘계급 특수적’ 지식인은 아니다. 곧 소외된 노동자 계급의 역사 인식과 세계관은 계급 특수적인 것이 아니며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통해서만 진정한 ‘인간 해방’을 가능케 할 ‘인류사회 발전의 보편적 동력원’이라는 점에서, 지식인의 시각은 ‘계급 초월적인 역사적 보편성’에 그 토대를 둬야 한다는 논지다. 

사르트르 역시, 노동자 계급의 해방이라는 과제는 모든 계급에게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류 역사적 목표라는 점을 내세워, ‘계급 보편적’ 이념이자 가치인 ‘인간 해방’을 현실화하는데 지식인이 선도적으로 나설 것을 주창했다. 부르디외도 ‘지배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전락해 버린 지식인의 실태를 비판하면서, 외부의 ‘모든’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독립적 위치’에서 현실에 개입해 ‘보편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지식 생산자가 될 것을 주문했다. 

현존하는 미국의 대표 좌파 지식인 촘스키 또한 ‘지식인의 책무는 (보편적)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진술을 통해,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지닌 통치 계급의 입장을 옹호함으로써 특정 정치적 사태의 본질을 은폐·왜곡하는 태도와 결연히 단절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근대적 지식인론은 인간 해방 사회의 구현이라는 ‘근대의 기획’은 지금도 유효하며 이를 달성하는 데 지식인의 역할은 여전히 긴요하다고 평가한다.

이는 특정 사안의 이면에 놓인 ‘보편적·실체적 진실’을 간취해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각토록 인도하는 ‘계몽적 지식인’으로서의 소임에 주안점을 두고 제기된 것이다. 더불어 규범적으로 정당한 입장을 구성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점에서, 지식인은 응당 ‘계몽적 리더’여야 하며 그에 상응하는 리더십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함을 말해준다. 

이때 리더십은 ‘계몽적 리더십’인 바, 이는 구성원들에 위에 군림해 일방적으로 지휘 통제하는 리더십이 아닌, 설득과 대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각성하고 보편적 진실을 간취토록 인도하는 리더십, 아울러 계급적 특수 이익이 아닌 사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기여하는 ‘계급 보편적인’ 계몽적 리더십이다.  

이 같은 근대적 지식인과 리더십에 관한 논변은, ‘적과 동지의 엄격한 구분’에 따라 ‘내편은 다 옳고 네 편은 청산의 대상’이라는 진영논리가 판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새로운 지식인상에 대한 ‘유의미한’ 메시지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선우현 청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사회비판과 정치적 실천』, 『우리시대의 북한철학』, 『위기시대의 사회철학』, 『한국사회의 현실과 사회철학』, 『자생적 철학체계로서 인간중심철학』, 『홉스의 리바이어던』, 『평등』, 『도덕 판단의 보편적 잣대는 존재하는가』, 『한반도의 분단, 평화, 통일 그리고 민족』(기획·편집),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인가』(기획·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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