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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 2001년 상반기 학술계를 결산한다
[동향] 2001년 상반기 학술계를 결산한다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7.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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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과 퇴계의 화해 등
弔鐘의 울림을 알람 삼아 상반기 아카데미는 기지개를 폈다. 죽음의 모양새나 의미는 천양지차겠지만 수백년의 시간에도 퇴락하지 않고 기억될뿐더러 숭앙 받기까지 하는 죽음이란 우리 시대에 어떤 뜻을 지니는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다석 류영모와 함석헌은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우리의 이성과 감성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조선시대의 유학계를 대표하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탄생 5백주기’를 맞아 저서출간과 학술대회 개최가 끊이질 않는다. ‘남명학회’(회장 이남영 서울대 교수)가 창립되기도 했고 남명학연구소(경상대), 퇴계학연구소(경북대)에서는 기념 학술행사가 이들의 탄생시기인 8월과 10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남명과 퇴계의 화해

이들이 5백년만에 부활한 사연은 그간 우리 학계의 심적 압박감을 더해왔던 ‘한국’ 이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이어진다. 특히 남명은 ‘한국’ 성리학의 타이틀에 들어맞는 학자였으며, 스스로를 ‘處士’라고 호칭하여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선비의 이미지로 각인된 인물이다.

4백년을 더해보자. 3월의 서점을 온통 채운 화제는 1백년 전 11년의 간격을 두고 태어난 사상가 ‘다석 류영모와 함석헌의 재발견’이었다. 스승 류영모가 서구의 ‘빛의 형이상학’에 정면승부를 걸고, 제자 함석헌이 남루한 한국의 역사를 견디면서 생각하는 백성이 되라고 충고했을 때, 지금의 학계가 그들의 질타와 충고를 쉬 극복할 수는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석전집’(솔 刊), ‘함석헌 평전’, ‘함석헌 사상을 찾아서’(삼인 刊)를 비롯하여 류영모와 함석헌의 책들이 쏟아져 나올 때, 이들을 통해 ‘한국사상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었던 것이다. 퇴계나 남명처럼 이들 역시 지금의 우리에게 결핍된 가치의 전도사들이었던 셈이다.

다시 2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도올현상’을 통해 노자와 공자를 무덤 속에서 호출해 보자. 우리 시대의 ‘문제적 인간’ 도올 김용옥이 해석해 낸 노자와 공자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아카데미 안과밖을 들쑤셔놓았기 때문이다. 특기할 점은 아카데미 밖에서는 노자와 공자에 묻어있는 도올이라는 우상의 황혼에 열광했지만, 아카데미 안에서는 죽은 노자와 공자의 고증학을 건사하기에 급급했지 정작 도올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선 조소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올은, 가만히 보고 있기에는 너무 시끄럽고 나서서 간섭하자니 체면이 안서는 ‘등에’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소인배로 몰아버리거나 지식엔터테이너로 격하시키는 것이 학계로선 최선이었던 것이다. 유학계에서 처음으로 나온 학문적 반응이 ‘일본베끼기’에 대한 의혹이었으니 달리 해석의 가능성을 찾기는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급기야 도올이 하나의 문화현상, 혹은 신드롬으로 해석되면서 학문적 영토에 진입할 수 있었다. 도올은 동양학에 있어 하나의 징후였다. 도올에 대한 ‘문화권력’ 의혹과 동양학의 인기는, 김진석 인하대 교수와 김성환 군산대 교수 사이에서 ‘동양학 패권론’과 노자의 해체론적 해석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본지 203∼206호, 207호 12면 참조).

우리 시대 학인들은 죽은 연후에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수년만에 잊혀져 버릴지도, 그리움의 원천으로 수천년 동안 기억될지도, 혹은 미당 서정주처럼 죽음과 함께 비판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계간 ‘창작과비평’ 2001년 여름호에 실렸던 시인 고은의 ‘미당 담론’은 미당의 죽음에 불명예의 낙인을 찍었다. 이후 신문지상을 통해 이어진 미당옹호론과 격하론은, 파시즘 시대 지식인의 내면풍경 비판으로 이어진다. ‘미당 논쟁’은 파시즘적 수구언론과 정치세력의 현실 속에서 읽어내야 한다. 언론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입장표명을 할 것인가 객관적 비판이라는 무입장의 입장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현재 첨예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그 논쟁이 사후의 역사를 통해 반드시 평가될 것이라는 사실은, 최소한 상반기의 학술동향을 읽으면 명백해진다.

북한이해 한 차원 높아져

한편, ‘탈분단시대의 모색’에 대한 논의로 상반기의 후반부는 온통 달아올랐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주최 ‘탈냉전시대의 북한연구’, 통일연구원 주최로 열린 ‘한반도 평화정착과 국제협력’ 등, 남북정상회담 개최 1주년을 기념하고 다가올 탈냉전시대를 준비하는 학술모임이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실상 북한과의 학문적 교류와 이해증진을 위한 모임들이 속속 생긴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경제 관련 학회 바깥에서도 북한연구가 활발했다는 것이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가령 북한의 역사학과 영문학 연구를 비롯한 북한 관련 세부학문분야의 확대와 더불어, 머지않아 현실의 문제로 등장할 학문공동체에 대한 모색도 논의되고 있다.

연구대상으로서의 북한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증가했다고 해도 북한연구가 쾌속질주하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탈분단시대에 대한 기대를 이데올로기 분쟁으로 비화시키고 있는 냉전세력들 틈에서 연구의 행동반경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현실정책과 학문연구에서 모처럼 맞은 기회와 조건을 철저히 활용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현실의 문제가 검토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6월 연달아 개최된 학술모임들에서도 이런 문제는 논외일 수밖에 없었다. 가령, 경협에 대한 수구언론과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퍼주기론’으로 비약되고, 야당의 보혁갈등은 대북정책에 혼선을 가중하고 있으며, 국민적 합의는 더군다나 묘연한 상황. 이런 속에서 통일교육을 통한 탈냉전시대를 대비하는 장기적인 준비가 부실하다는 지적은 ‘통일의 정치경제학’ 만으로는 탈분단시대를 맞이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소박한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정세의 급변과 첨예한 논쟁으로 거침없이 달려온 상반기였다. 보수언론의 ‘발악적’ 자기정당화는 최소한의 사회적 공공성조차 의심케한다. 이런 때 각자의 이해를 고수한 채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할 뿐인 만남을 끝장낼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역사가 그들의 죽음 이후를 긍정적으로 기록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 최근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가 출간한 ‘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삼인 刊)에서 말하는 그런 지식인이 필요한 시기다. 다시, 지식인 문제로 옮아가는 것은 그 까닭이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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