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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무게
말의 무게
  • 신희선
  • 승인 2022.10.10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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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위기의 대통령실”, KBS 탐사보도 프로그램 「시사직격」에서 최근 다루었던 제목이다.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하면서 집무실과 관저 공사를 맡은 ‘수상한’ 업체와 ‘은밀하게’ 진행된 수의계약을 비롯해 사적 채용, 비속어 논란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들을 다루었다.

소통을 강조해 출근 길 도어스테핑을 하는 대통령인데, 대통령실은 취임식에 참석한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각종 의혹에 대한 언론의 질의에 보안을 이유로 함구하고 있다고 한다. 윤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순방외교 중에 짧게 스치듯 말한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논란의 정점이다. 검사 시절 평상시 언어 습관대로 가볍게 내뱉은 욕설이 발단이었다. 대통령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뒤늦게 나온 대통령실의 해명과, 최초로 동영상 자막을 단 MBC를 겨냥해 자막조작을 사과하라는 주장이 더해져 야단법석이다.

현 정권에 불편한 MBC를 항의 방문하여 가짜뉴스로 국민 여론을 호도시켰다며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극우보수 단체까지 나서서 “조작 선동 방송을 하는 MBC를 퇴출하자”며 전화운동과 서명을 받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보이스피싱 집단”, 윤핵관으로 불리는 권성동 의원이 민주당을 두고 한 말이다. 해외순방 과정에서 비속어를 한 대통령과 성과가 없었던 정상외교를 ‘외교참사’로 비판한 야당을, 오히려 한미동맹과 국익을 훼손한 집단이라고 거칠게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은 “막말보다 더 나쁜 게 거짓말”이라며 “벌거벗은 임금님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하였다. 부주의한 발언의 진실을 가리기에 급급해 억지 해명을 한 것을 두고 “앞뒤가 안 맞는 말로 무능함을 감추려 하면 신뢰만 잃는다”고 지적하였다. 

누구든 말실수를 할 수 있다. 실수를 했다면 이를 인정하고 곧바로 사과하고 다시 되풀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윤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을 우연적 실수로만 볼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반성하지 않고 거짓 해명과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다.

소포클래스가 말한 것처럼 “어느 상황에서든 진실은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정치가 무너지는 이유는 불신에 있다. 진실만이 신뢰를 낳는다. 공자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자공에게 군사와 경제가 아니라 백성들의 신뢰라고 답하였다. ‘신(信)’의 한자 뜻을 헤아려 봐도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가 신뢰의 요체다. 

그런 점에서 비속어 파문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속내에 국민들의 실망감이 크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윤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며 답한 비율이 65%나 되었다. 더구나 18~29세인 젊은 세대는 74%나 현재의 국정수행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취임부터 줄곧 ‘자유’를 역설하였던 대통령이 자신이 했던 말을 보도했다고 언론에게 날선 권력을 보이며, 검찰을 동원해 강경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에 많은 국민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한 마디 말에도 한 사람의 성품이 담긴다. 미미 고스(Mimi Goss)는 『What is your one sentence?』라는 책에서 한 마디 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말을 할 때는 ”둘 사이의 친밀한 관계이든 수백만 명 사이의 공적 관계이든 모든 관계에서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문장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정치인의 경우 사소한 말 한마디와 작은 행동조차 신중해야 한다.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고 사회를 통합하기보다 권력으로 자신이 했던 말을 바꾸며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혼란한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우려한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여론을 보며 ‘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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