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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 최승우
  • 승인 2022.10.06 2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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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 지음 | 돌베개 | 368쪽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포기한 꿈, 실연, 첫사랑, 나이 듦, 죽음…
질문하는 시각예술가 박혜수의 상실 탐구

“작가 자신에 의한 작품 해설이라는 드문 시도이면서
그 자체로서 빼어난 사회학 에세이” _김현경(인류학자, 『사람, 장소, 환대』 저자)

‘꿈’, ‘실연’, ‘첫사랑’, ‘나이 듦’,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난 10여 년간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탐험해온 시각예술가의 작가 노트이자 사회학 에세이. 솔직해서 ‘까칠하다’, ‘심술궂다’는 말을 종종 듣는 박혜수 작가는 보통은 사람들이 묻지 않는 질문들을 던지며, 독자들이 그 대답을 찾아내는 감각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작가의 이야기와 작품 이미지와 전시에 참여했던 관객들의 이야기가 뒤섞이는 장소들을 거치며, ‘우리’가 떠나보낸 것들, 잃어버린 것들, 사라져간 것들, 수많은 이별과 상실 속에서도 여전히 소중한 것들에 대해 되묻는 책이다.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은 상실과 애도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박혜수 작가가 개인적으로 천착해온 질문이자 프로젝트 이름이기도 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에 대한 한 권의 답변이면서,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더욱 증폭시킨 질문인 ‘어떻게 잘 이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사려 깊은 대답을 모색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꿈과 사랑을 떠나보내고, 나이가 들고,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는 박혜수 작가의 작업, 그리고 이 책에서 지금의 한국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탐구된다. “한국사회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회복’을 너무 빨리 강요한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유가족이 임종을 보지 못했고 강제로 장례를 생략당해도, 피해자들임에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한다. 오랫동안 준비한 일들이 언제 다시 시작되는지 알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기다려라’는 답변을 듣는 것도 이젠 공허하다.

시작조차 못 했는데 제대로 해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인생의 한 시기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는데도 우리는 ‘다시 시작’을 강요받는다.”(182~183쪽)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애도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코로나 유가족뿐만이 아니며, 그렇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해묵은 상처와 감정들을 잘 돌보고 떠나보내기 위해, 이 책은 예술가의 자리에서 개입한 흔적들을 담았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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