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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토대인 '경건', 세상을 바꾸다
자유의 토대인 '경건', 세상을 바꾸다
  • 최신한
  • 승인 2022.10.0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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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㉙_최신한 한남대 명예교수·철학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문화운동가였던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사진=위키피디아

슐라이어마허(1768~1834)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다. 그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활동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사회정치적 현실에 투신했던 문화운동가다. 프랑스 혁명이 보여준 자유의 정신은 튀빙겐 슈티프트(Stift)의 3인방(헤겔, 횔덜린, 셸링)과 마찬가지로 청년 슐라이어마허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았다. 혁명 직후부터 그는 여러 단편과 논문을 통해 혁명과 자유의 관계를 논했으며 설교를 통해 새로운 시대정신의 중요성과 의의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이러한 사유는 『윤리학』(1812/13), 『기독교 도덕론』(1822/23), 『국가론』(1829)으로 구체화 된다.

초기 낭만주의 운동을 함께 했던 F. 슐레겔, 노발리스와 함께 슐라이어마허는 프랑스 혁명의 의도와 목표에 대해 질문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려 했다. 혁명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화 된다. 그가 볼 때 세계는 혁명을 통해 새로운 자유의 건립과정을 경험한다. 혁명의 본질적 내용은 앙시앙 레짐에 맞서는 공화적 자유의 이념이자 좋은 국가의 이념이다. 『국가론』은 자유를 정치적 원리와 좋은 국가의 이념으로 규정한다.

슐라이어마허는 프랑스 혁명의 자유사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를 독일로 수입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양국의 상황과 삶의 양식이 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개인에게 고유한 성격이 있듯이 민족에게도 고유한 특징이 있다. 프랑스의 역사적 과정에 혁명의 불가피성이 있었다면 독일에는 이와 흡사한 정치적-사회적 상황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슐라이어마허는 혁명보다 개혁을 추구한다. 그에게 개혁은 시대정신이자 공화국의 이상이다. 국가의 개선은 혁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계적인 개혁의 전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가 추구한 것은 정치의 평화적 진화였다.

그의 사상가적 리더십은 나폴레옹 저항 운동으로 나타났다. 베를린의 반나폴레옹 단체인 ‘선행연맹’과 윤리-학문 단체인 ‘베를린 무법(無法)회’를 주도했으며 반프랑스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일에 연루돼 선동가로 몰리고 고발까지 당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혐의를 벗고 ‘용맹인 기사’ 훈장을 받음으로써 명예를 회복했다. 동시에 시대의 설교자였다. 시대를 위한 설교의 기준은 ‘경건을 통해 개방되는 자유’ 및 ‘시민사회적 덕으로서의 경건’이었다.

경건이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자유의 토대라면 경건은 자유 부재의 현실을 비판한다. 종교는 잘못된 현실이나 자유가 없는 현실에 대한 영원한 논박이다. 경건은 내면의 운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슐라이어마허는 현실을 변화시킬 능력 없는 경건은 자연스럽게 소멸한다고 경고한다. 경건의 소멸은 종교의 소멸이며 자유의 소멸이다. 경건을 통해 자유를 실현하는 것은 정교분리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리더십이다. 

프랑스 혁명이 일깨운 자유의 정신은 인간성의 이상이다. 만인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정신적 삶에 참여하는 존재일 뿐 결코 살아있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 일반은 기계적 활동과 노예적 복종을 극복하고 자유를 쟁취해야 하며, 국가는 사회와 문화의 발전을 보장함으로써 인간성을 보편적으로 성취해야 한다. 그에게 인간성은 삶의 아름다운 목표로서 인식과 욕망의 통일이 성취되는 마당이다. 자기만의 인간성과 삶의 목표를 발견하는 것은 개인에게 희망을 주는 진정한 가치이다. 그러므로 리더십은 개인의 인간성이 성취될 수 있는 현실을 마련해야 한다. 이 점에서 슐라이어마허는 보편적 인간성을 추구한 헤겔과 구별된다.

그의 『윤리학』과 『국가론』은 작금의 우리 현실에도 교훈적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정치적 리더가 존재하는가? 시민에게 진정한 자유의 의식과 인간성이 살아있는가? 정치 담론과 현실의 괴리, 정치적 리더와 시민의 분리, 자유 의식과 실천 의지의 불일치는 인간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성을 형성하는 개인성의 원칙과 사회적 통합은 분리될 수 없다.

 

최신한 한남대 명예교수·철학

독일 튀빙겐대에서 독일관념론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헤겔학회, 대한철학회, 철학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저술로는 『헤겔철학과 형이상학의 미래』, 『지평확대의 철학』, 『현대의 종교담론과 종교철학의 변형』 등 다수의 학술서적이 있다. 또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과 『기독교 신앙』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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