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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좌파 집권의 붉은 물결, ‘핑크 타이드’의 부활
[글로컬 오디세이] 좌파 집권의 붉은 물결, ‘핑크 타이드’의 부활
  • 임상래
  • 승인 2022.10.03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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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임상래 부산외대 스페인어과 교수
붉은 색이 2022년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좌파 정부 집권)물결이다. 핑크 타이드에 속한 각국 정부들은 중도좌파에서 극좌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사진=위키피디아

우리에게 콜롬비아는 커피로 더 잘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콧수염에 멋진 모자를 쓴 농부 모습의 상표로 잘 알려진 후안 발데스는 콜롬비아의 대표 커피인데 스타 벅스를 꺾었던 유일한 브랜드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후안 발데스 이상으로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있는 중요한 국가이다.  

우선 콜롬비아는 중남미의 리더 국가 중의 하나이다. 이 나라는 인구수로 볼 때 브라질, 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 큰 나라이다. 남미의 관문 국가로서 중미와 남미를 연결하고 있으며 남미 대륙에서 유일하게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접하고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국가이다. 옛 영토였던 파나마에 운하가 건설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안데스와 아마존에 종 다양성이 잘 보존돼 있어 생태의 보고이며 석유 등 천연 자원이 풍부한 세계적 자원 강국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콜롬비아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국가이다. 중남미 유일의 한국전쟁 참전국이며, 1962년 수교 이래 국제외교에서 줄곧 우리나라를 지지해온 우방이다. 또 중남미에서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몇 안 되는 나라이다. 우리나라에 가장 우호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콜롬비아에서 지난 6월에 있었던 대선은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나라 역사상 대선에서 최초로 좌파 후보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좌파 선거연합 ‘역사적 협약’의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무소속 에르난데스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콜롬비아는 냉전시대부터 지금까지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며 오랜 기간 동안 계속 우파가 집권한 국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페트로의 승리와 좌파의 집권은 콜롬비아 현대사적으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또 지난 수 십 년 간 정부군과 좌익 반군 간에 무력 충돌로 중남미에서 가장 잔혹한 내전을 겪은 국가이기도 하다. 페트로 후보는 1980년대 무장 반군세력인 M-19에 몸담았던 ‘좌파 게릴라’ 출신이다. 반군 출신의 좌파 정치인이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굴곡진 콜롬비아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이 갖는 의미는 콜롬비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왜냐면 이곳까지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남미 대륙의 정치 지형이 확실히 왼쪽으로 기울게 됐기 때문이다. 2천년대 전후 중남미를 휩쓴 좌파 집권 물결인 이른바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핑크 타이드는 2013년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망과 2016년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으로 사그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2018년 이후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니카라과, 칠레에서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교체됐고 올해 들어서는 코스타리카와 콜롬비아에 좌파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핑크 타이드의 부활을 알렸다. 

특히 대선은 핑크 타이드의 정점을 찍은 셈이 됐다.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에서 좌파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 중남미 역사상 처음으로 중남미 빅 6(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룰라 후보는 여론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기에 바야흐로 중남미 핑크 타이드는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중남미 대륙이 지금처럼 ‘핑크’였던 적은 없다. 그러나 중남미 핑크 타이드의 앞날은 결코 ‘핑크’가 아니다. 페트로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많은 1천129만 득표를 한 대통령이 된 것은 빈곤, 불평등, 부패, 범죄를 해결하라는 국민적 분노와 불만이 표출된 것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콜롬비아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의 모든 위기는 중남미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중남미 정치와 경제의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에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글로벌 식량·에너지·인플레 위기까지 더해져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 국면에 놓여있다. 역대급 핑크 타이드는 복합위기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이유이다.    

 

임상래 부산외대 스페인어과 교수

멕시코 국립대에서 멕시코 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원장이며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장을 역임했다. 중남미 국제이민 관련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고 현재는 중남미-스페인 관계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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