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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미생물도 서로 돕고 베푼다···생태계 본 받아 공생이 답 
장내 미생물도 서로 돕고 베푼다···생태계 본 받아 공생이 답 
  • 최승우
  • 승인 2022.10.14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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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㉑ 김응빈 연세대 교수(시스템생물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달 3일 김응빈 연세대 교수(시스템생물학과)가 「생태계의 경쟁과 공생」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2강은 김대수 카이스트 교수(생명과학)의 「뇌과학에서 자유의지」, 제23강은 이재진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디지털 미디어의 진화와 언론과 표현의 자유」, 제24강은 박상욱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의 「기술 패권과 표준 경쟁」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대양이나 맑은 호수와는 달리 동물의 장내 생태계는 미생물에게 영양분이 풍부하다. 먹이가 많다보니 당연히 여기에 거주하는 미생물도 많다. 그런데 장내 미생물의 세계에서 호혜적 협력이 아닌 베풂이 버젓이 존재한다. 치열한 먹이 경쟁도 결국은 이런 베풂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공생이란 말 그대로 함께 사는 것이다. 공간(서식지)과 자원(먹이)을 공유하며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다른 생명체와 만남은 우연이지만, 사귐(상호작용)은 필연이다. 사귀다 보면 돕기도 하고 싸울 때도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공생은 협동과 경쟁, 이 두 가지 관계 속에 이뤄진다는 얘기이다. 생물학적으로 경쟁은 공생의 하부 개념이라는 사실을 유념하기 바란다. 아울러 경쟁은 대놓고 맞붙어 겨루기 또는 쫓고 쫓기기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김응빈 연세대 교수(시스템생물학과)는 "생물 다양성은 공생의 시너지 효과이다. 그러므로 공생은 생명체들의 오래된 미래"라며 "지금의 생명체를 만들어준 머나먼 과거이자, 끊임없이 새로운 ‘결합’ 관계를 이뤄 나가야 하는 생명체들의 미래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살아 있는 생물과 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통틀어 ‘생태계’라고 한다. 범위를 정하기에 따라 생태계의 규모와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우리 몸이나 지구는 다 같은 생태계이다. 크기만 놓고 보면 비교 불가이지만 기본 작동 원리는 똑같다.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체는 결국 ‘먹고 먹히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른바 약육강식 법칙이 지배하는 생존 경쟁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생태계에서 생물 종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한마디로 ‘먹고 먹히는 관계’이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먹이그물’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생태계의 생물 구성 요소는 생산자·소비자·분해자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먹이그물이라는 에너지와 영양물질의 이동 얼개를 통해 서로 연관돼 있다.

생산자는 ‘광합성’과 ‘화학무기영양’으로 영양분을 만들어 다른 생명체들에게 공급한다. 광합성은 빛 에너지를 받아 식물과 조류 또는 세균에서 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생산자에서 출발한 물질은 어디를 통과하든지 간에 최종적으로 분해자에게 모였다가 다시 생산자로 돌아온다.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사체는 분해돼 생산자가 새로운 영양분을 만드는 원료로 다시 쓰이기 때문이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주는 분해자 역할은 세균과 곰팡이를 비롯한 미생물만이 해낼 수 있다. 이처럼 미생물은 지구 생태계의 화학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모든 생명체 존립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생태계를 작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무생물 구성 요소는 에너지와 물질이다. 태양에서 유래하는 에너지는 생명체와 먹이그물을 통하여 활용 또는 저장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열 형태로 지구 생태계를 빠져나가기 때문에 에너지 흐름은 일방통행이다.

반면, 물질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게 된다. 이처럼 생태계 내에서 물질들이 생물과 무생물 구성 요소 사이를 순환하는 현상을 ‘생지화학적 순환’이라 한다. 

생태지위란 어떤 생명체가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인간사회로 치면 직업이 생태지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직업이 없으면 사회생활이 쉽지 않듯 생태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생명체 역시 그 환경에서 살기 어렵다.

생태지위가 비슷할수록 경쟁이 심화하고, 심지어 똑같으면 이론상으로는 한곳에 같이 살 수 없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누군가 생태지위를 조금만 변화시키면 큰 갈등 없이 공존할 수 있다는 추론에 도달한다. 이런 맥락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 손실에 따른 상호 의존은 과도한 경쟁을 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대양이나 맑은 호수와는 달리 동물의 장내 생태계는 미생물에게 영양분이 풍부하다. 먹이가 많다보니 당연히 여기에 거주하는 미생물도 많다. 예컨대 인간의 장에는 세균만 해도 수백 종 이 살고 있고, 그 수를 따지자면 우리나라 수도권의 인구 밀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여기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주변 미생물에게 먹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온갖 이기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당을 젖산으로 발효시켜 주변 환경을 산성으로 만들어 다른 미생물의 접근을 막기도 하고, 더 공격적으로 항생물질을 분비해 경쟁자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각박한 현실에서 생존 경쟁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아주 익숙한 광경이다. 권모술수에 능한 꾼들에게는 그들의 부조리를 자연의 원리라고 정당화시킬 수 있는 그럴싸한 근거로 삼고 싶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급망’이라는 경제 용어가 있다. 기업이 원재료를 구매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일련의 네트워크를 뜻하는 말이다. 공급망의 위쪽에는 공급 업체들이 있으며, 아래쪽으로는 최종 소비자에게 제품을 전달하기 위한 조직이 있다. 다양한 관계로 이뤄지는 공급망에서 재화와 정보는 양방향으로 흐른다. 그런데 우리의 장내 생태계도 일종의 공급망이다.

장내 미생물은 각기 기능에 맞게 공급망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일례로 루미노코쿠스 브로미라는 세균은 인간의 소화 효소와 다른 미생물들이 분해하지 못하는 ‘저항성 전분’을 분해한다.

브로미는 특수한 효소 복합체를 세포 밖으로 분비해 분해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이 자연히 주변에 퍼지게 되고 당연히 여러 미생물이 모여들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공급망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다른 미생물의 대사 산물을 먹고 사는 미생물이 많아진다.

브로미 없이는 있을 수 없는 미생물 공동체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호혜적 협력이 아닌 베풂이 미생물의 세상에 버젓이 존재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치열한 먹이 경쟁도 결국은 이런 베풂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한 지구는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져 사는 유일한 행성이다. “광활한 우주의 변방에 있는 이 떠돌이별에 왜 생명체가 존재해야 하는가?” 이렇게 물으면 솔직히 과학이 답하기 어렵다.

“지구에 어떻게 생명체가 생겨났는가?”라면 기꺼이 응답하겠다. 과학에서 묻는 ‘왜(why)’는 사실 ‘어떻게(how)’이다. 보통 과학자는 ‘궁극(ultimate)’ 질문보다는 ‘근접(proximate)’ 질문으로 자연 현상의 작동 원리 또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이런 맥락에서 질문에 답한다. 생물 다양성은 공생의 시너지 효과이다. 그러므로 공생은 생명체들의 오래된 미래이다. 지금의 생명체를 만들어준 머나먼 과거이자, 끊임없이 새로운 ‘결합’ 관계를 이뤄 나가야 하는 생명체들의 미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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