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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고려대학교
오직 고려대학교
  • 최승우
  • 승인 2022.09.30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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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식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464쪽

홍일식 전 고려대학교 총장의 회고록이자 고려대학교에 관한 풍성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됐다. 홍 전 총장은 1936년 고려대학교 자연계캠퍼스 바로 옆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자연계캠퍼스인 애기능 동산에서 뛰어놀았다는 홍 전 총장은 1955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교수가 되고 민족문화연구원 발전에 헌신하고 제13대 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80여 년 그의 생애에서 고려대학교는 자신에게 숙명이었다고 회고한다.

유진오, 김상협, 조지훈… 지금도 그리운 스승들
이 책에서 홍일식 전 총장은 자신의 생애에 큰 영향을 끼친 스승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광복이 되기 전 소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 고려대학교(당시는 보성전문학교) 본관 앞에서 풀을 뽑고 있는 인촌 김성수 선생에게 처음 인사를 드렸던 일로부터 회고를 시작한다.

고려대 국문과 입학 후 큰 가르침을 주신 구자균, 김춘동, 조지훈 선생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훗날 자신의 총장 시절 내내 마음속 사표(師表)가 되었던 유진오, 김상협 선생을 ‘총장학의 스승’이라 밝히고 있다. 국문과 학부 재학 시절 2년 동안 육당 최남선을 사사(師事)하며 《육당연구》를 출간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리 현대사의 큰 인물이었던 분들을 가까이서 직접 모시고 경험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고려대학교를 넘어 우리 지성사의 생생하고 흥미로운 일화들을 담고 있다.

한국 인문학 발전과 민족문화연구원에 바친 생애
홍일식 전 총장은 1968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현재 민족문화연구원) 총간사를 맡았다. 이후 그는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이었던 조지훈 선생이 작고하기 직전 유언으로 남긴 “앞으로 외국에서 오는 사람이 고려대학을 와서 봐야 한국을 알게 되고, 고려대학을 오는 사람은 민연을 와서 봐야 고려대학과 한국의 진면목을 알게 해달라”라는 말을 지키며 평생을 살았다.

1978년 40대 초반의 나이에 제5대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임명된 이후 제6대, 7대, 8대, 11대 소장에 이어 1998년 민족문화연구원 초대 원장을 맡았다. 이 책에는 《한국문화사대계》 《한국민속대관》 《중한대사전》 등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펴내고 한국 인문학 분야의 큰 성과로 인정받는 책들의 출판과 판매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1980년대 중반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어만 가르쳐도 먹고 사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신념으로 만든 민족문화연구소 한국어문화연수부는 현재 별도의 단독 건물을 가진 고려대학교 한국어센터로 성장했다. 이 책에서 홍 전 총장은 1981년 ‘국풍81’에 민족문화연구소가 후원단체로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 5.18군사법정에서 제자를 변호하는 증인으로 섰던 사연 등 그동안 감추어두었던 이야기도 풀어놓았다.

‘바른교육 큰사람 만들기’ 운동으로 인성교육 확산

1994년 6월 15일 고려대학교 제13대 총장에 취임한 저자는 그해 10월 10일 ‘바른교육 큰사람 만들기’ 교육선언을 발표했다. 고려대학교가 앞장서 높은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이 선언은 우리 사회에 인성교육의 가치를 확산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총장 재임 4년 동안 ‘바른교육 큰사람 만들기’ 교육성금으로 현금 860억 원, 부동산 2,600억 원이 모였는데 고려대 졸업생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참여가 높았다.

도덕성과 합리성을 갖추고 대학을 운영할 때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음을 확인한 홍일식 전 총장은 이 책에서 고려대학교가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민립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홍일식 전 총장은 현재 재단법인 문화영토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81년 민족문화연구소에 ‘영토문제연구실’을 만들 때부터 그는 ‘문화영토’라는 개념을 착안했다. 오늘날 세계로 확산하는 한류를 예견한 듯 그는 국경을 넘어 문화로 교류하는 시대가 올 것을 대비한 ‘문화영토’ 개념을 내세웠다. 이 책은 홍일식 전 총장이 오랫동안 천착해 온 문화영토 개념에 대해 1995년 와세다대학에서 했던 강연 원고로 마무리된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인문학자 총장이라고 할 홍일식 전 총장의 생애와 사상과 혜안이 담긴 회고록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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