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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품속 가야 이야기
백두대간 품속 가야 이야기
  • 최승우
  • 승인 2022.09.30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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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장근 지음 | 다할미디어 | 294쪽

철과 봉화의 유적으로 알아보는,
전북가야, 세상에 드러나다

금남정맥(錦南正脈)과 호남정맥(湖南正脈)은 전북을 동부의 산악지대와 서부의 평야지대로 구분 짓는다. 전북 동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이 북쪽의 금강과 남쪽의 섬진강 분수령을 이룬다.

영호남의 자연 경계를 이룬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쪽에 운봉고원과 서쪽에 진안고원이 위치하며, 진안고원은 달리 호남의 지붕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전북 동부는 지정학적인 이점을 잘 살려 선사시대부터 줄곧 전략상 요충지이자 교통 중심지를 이뤘다.

가야 소국들이 백제의 중앙과 교류하는데 대부분 이용해야 하는 중심이 되는 옛길이 전북 동부를 통과하여 교역망의 허브 역할을 담당했으며, 전북 동부를 무대로 불길같이 맹렬하게 전개된 가야와 백제, 신라의 역학관계는 대체로 철산지의 장악 혹은 사통팔달했던 교역망의 관할과 관련이 깊다. 그리하여 가야와 백제, 신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전북 동부는 마한 이래로 내내 백제 문화권에 속한 곳으로만 인식됐다. 1972년 임실 금성리에서 나온 유개 장경호가 전북 가야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고, 1982년에는 남원 월산리 고분군 발굴조사에서 백두대간 동쪽 운봉고원에 가야 세력이 존재한다는 고고학 단서를 제공했다.

가야 고총에서 금과 은으로 상감된 환두대도 손잡이가 출토되어 당시 역사학계를 충격 속에 빠뜨렸다. 최고의 위세품으로 전북 가야의 존재를 신고했지만 전북 가야의 기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이르러서는 백두대간 서쪽 진안고원을 대상으로 가야계 문화유적을 찾고 알리는 지표조사와 그 성격을 밝히기 위한 발굴조사가 추진됐고, 이후 해마다 군산대학교 고고학팀이 자체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유적과 유물로 전북 가야의 존재를 꾸준히 알렸다.

전북 동부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가야세력의 정체성과 지역성을 규명하는데 꼭 필요한 고고학 자료도 상당량 축적됐다. 전북 동부를 모두 다 대가야 영역에 속했던 곳으로 인식하고 가야 소국 기문국己汶國이 임실, 남원 등 섬진강 유역으로 비정된 견해가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지만 섬진강 유역에서는 가야 소국의 존재를 고고학 자료로 확증해 주는 가야 중대형 고총의 존재가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가야 관련 최고의 위세품도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오직 임실·순창 봉화로를 근거로 장수 가야가 섬진강 유역으로 일시적인 진출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군다나 금강 최상류에 지역적인 기반을 두고 가야의 소국으로까지 발전했던 장수 가야와 관련된 고고학 자료가 가야사 복원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아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종래에 전북 동부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를 문헌에 접목 시켜 가야 소국의 위치 비정도 다시 시도되고 있다. 백두대간 품속 운봉고원과 진 고원의 전북 장수군에서 가야세력이 4세기 말 처음 등장해 계기적인 발전 과정을 거쳐 마침내 운봉고원의 기문국과 진안고원의 장수 가야, 즉 반파국으로 발전했다는 주장도 발표됐다. 따라서 가야 소국 기문국과 반파국은 전북 가야의 아이콘인 것이다.

무엇보다 금동신발[金銅飾履]과 금제이식(金製耳飾), 철제초두(鐵製?斗), 편자(鞭子), 꺽쇠 등이 전북 가야의 고총에서 출토되어, 삼국시대 위세품을 파악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제 계수호(鷄首壺)와 수대경(獸帶鏡), 일본열도에서 바다를 건너 온 나무로 만든 빗 등이 전북 가야의 고총에서 함께 나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야와 백제, 신라, 마한계 최상급 토기류도 거의 다 모여 있다.

한마디로 전북 가야의 타임캡슐이다. 엄밀히 표현하면 전북 가야는 동북아 문물 교류의 허브로서 다양성 과 역동성, 국제성으로 상징된다.

그런가 하면 전북 동부에서 120여 개소의 가야 봉화도 그 존재를 드러냈다. 가야 봉화는 국가의 존재와 국가의 영역과 국가의 국력을 대변한다. 가야 봉화로 문헌 속 가야 소국의 존재를 방증해 줬다.

아직은 가야와의 연관성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전북 가야의 영역에서 250여 개소의 제철유적도 발견됐다. 앞으로 머지않아 철의 왕국 가야를 제철유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백두대간 품속에 가야문화를 당당히 꽃피운 전북 가야는 한마디로 첨단 과학 기술로 요약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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