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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남, 김중배, 김우창의 칼럼들…감동과 통찰의 글쓰기
최일남, 김중배, 김우창의 칼럼들…감동과 통찰의 글쓰기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4.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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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칼럼, 기억의 계보학(2)

좋은 칼럼 쓰기는 어렵다. 더구나 한국 언론에서 한 사람이 5년 이상 고정물을 쓴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런 중에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회자하는 칼럼들은 존재한다. 어떤 것이 있을까.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86년 최일남의 칼럼을 두고 “내가 그의 컬럼을 정독하는 것은 (중략) 내가 미치지 못하는, 더듬기조차 하지 못한 문제성을 탁월한 정치적 감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일남의 ‘진보적 정당이 필요하다’라는 칼럼을 문학적 감동이라고 부를만한 트임을 갖고 읽었다고 말한다.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문화부장을 지냈고 소설가로도 활동 중인 최일남의 칼럼은 많은 이들로부터 ‘명칼럼’으로 기억됐다.

영향력 측면에서는 김중배 칼럼이 단연 최고다. 김중배는 1982년 3월부터 1984년 2월까지 동아일보에 ‘그게 이렇지요-김중배 세평’을 연재했다. 김중배는 이 칼럼들을 모은 책 서문에서 “내 딴엔 가성과 허상의 폭력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광년의 별빛에 실어야 하는 글자는 쓰러질 수 없다는 믿음으로 엮어낸 글들이었다”라고 쓴다. 엄혹했던 80년대, 그는 칼럼집필 기간동안 항상 ‘진실’을 얘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김중배 칼럼’과 함께 ‘김우창 칼럼’을 명칼럼으로 꼽는다. 언론에 꾸준히 칼럼을 써왔던 김우창은 현재 경향신문에 ‘시대의 흐름에 서서’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김우창은 이 칼럼에서 독일 에버바하 수도원 방문을 통해 느낀 공동체 정신의 필요성, 강한 홍보 언어와 정치 언어가 난무하는 일상 현실이 가상화 될 우려 등 원로의 시각을 깊이있으면서도 현실 비판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사)는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의 칼럼을 괜찮은 칼럼으로 소개한다. “칼럼에도 팩트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김영희는 국제 전문 기자의 ‘팩트’가 녹아있는 칼럼을 쓴다”고 평가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언론)는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에서 전문적 면모가 보이지만 위축된 가치와 이데올로기 때문에 아쉽다”고 평가했다.

최혜실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즐겨 읽었던 칼럼으로 ‘장영희 칼럼’을 소개한다.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는 2001년 3월부터 한 달에 한번씩 케임브리지에서의 안식년 생활을 조선일보에 기고하다 그 해 9월부터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제목으로 2004년 5월22일까지 햇수로 3년을 연재했다. 이 칼럼에서 그는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카프카의 ‘변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 다양한 고전을 일상과 연결시킨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은 ‘장영희의 문학의 숲’으로 이름을 바꿔 2004년 9월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칼럼에서 그는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라며 자신의 암 선고 소식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 많은 이들을 감동에 젖게 했다.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국문학)는 강준만 칼럼을 꼽으며 “정치적 입장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꼭 말해야 할 의제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문제제기를 한다”고 평가했다.

홍세화씨는 한겨레 신문에 4년간 연재한 ‘빨간 신호등’ 칼럼들을 묶은 책에서 칼럼쓰기의 지난함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4년 동안 ‘빨간 신호등’과 씨름했다. 마치 오랜 동안 몸담지 못한 한국 사회를 ‘빨간 신호등’을 통해 치열하게 만나겠다는 듯이. 그래서인가, 지난 4년이 나에겐 그 이전의 20년에 비해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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