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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5] 혐오의 심리학
[한민의 문화등반 45] 혐오의 심리학
  • 한민
  • 승인 2022.10.03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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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5

 

한민 문화심리학자

혐오는 두려움, 슬픔, 행복 등의 기본 정서 중에서도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종류의 감정이다. 정서를 적응에 따르는 생물학적 반응으로 보는 입장에 따르면, 혐오는 썩은 음식을 먹었을 때 혹은 감염된 상처나 독충 등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거부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자 로진(Paul Rozin)은 혐오는 오염물의 체내화라는 관념에 초점을 둔 복잡한 인지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역겨운 대상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올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질병, 감염, 사망 등)을 상상함으로써 혐오가 구체화된다는 것이다.

즉, 혐오가 강렬한 이유는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의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철학자 윌리엄 밀러는 혐오의 핵심적 관념을 전염에 대한 생각이라 보았다. 역겨운 물질이 내 몸에 들어와서 나쁜 결과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혐오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역사상 존재한 모든 사회는 혐오와 같은 강한 감정을 통해 인간의 동물성이 드러나는 경계를 단속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집단을 다른 집단과 구분하고 집단 내의 연대감을 높이는데 유용한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에서 혐오가 수행해 온 실질적인 기능이다.

그러나 한국의 혐오는 일반적인 혐오라고 보기 어렵다. 보통 혐오가 주로 지배적 집단이 소수 주변집단에 대한 차별의 형태로 드러나는 반면, 한국에서 나타나는 혐오는 성소수자나 타인종에 대한 혐오처럼 전형적 혐오도 있지만, 세대, 계층, 성별, 정치적 성향, 아이 키우는 부모 등 그 대상과 방향이 천차만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드러나는 형태도 차별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공격에 가깝다. 

상대에 대한 공격성을 유발하는 정서는 분노다. 분노 역시 인간의 기본 정서 중 하나로, 목표의 좌절이나 내 영역이나 소유에 대한 공격에 대해 촉발되는 감정이다. 다른 기본 정서들과 마찬가지로 분노 역시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기능을 한다. 내 영역과 소유를 노리는 적을 쫓아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에 따르면, 혐오와 분노는 매우 다른 종류의 감정이다. 혐오가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불쾌한 대상에 대한 거부를 나타낸다면, 분노는 부당함 또는 위해에 대한 생각이 주를 이룬다. 다시 말해, 분노란 나에게 부당한 일이 행해졌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한국의 문화적 정서는 ‘억울’이다. 한국의 문화적 정신병리 화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 억울함은 ‘부당함에 대한 분노’로 요약할 수 있는데, 세대, 계층, 성별 등 한국사회의 주된 혐오현상을 들여다보면 결국 상대방이 가진 ‘기득권 또는 특권’에 대한 분노가 두드러진다. 내가 못 가진 것을 너희들이 ‘부당하게’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한 분노다.

혐오도 분노도 결국 ‘통제감’을 획득하기 위한 욕구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혐오는 타인들을 멸시의 대상으로 놓고 차별함으로써, 분노는 내가 부당하게 당했다는 생각으로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잃어버린 통제력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차별이라는 동일한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혐오와 분노의 과정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은 문제의 이해와 해결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분노는 저항과 건설적 참여의 동기가 될 수 있지만 혐오는 도피와 방기로 이어지기 쉽다고 주장한다. 혐오는 본질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의 결과는 상대가 사라지거나 최소한 격리되어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는 혐오처럼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또는 상황의 변화를 촉구한다. 내게 부당한 일을 겪게 한 대상, 사회, 시스템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결국 내가 겪은 부당함을 해결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사회에서 급격하게 확산되는 혐오, 아니 분노는 사회적 불공정에 대한 저항과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참여의 의지로 바뀔 수 있다. 관건은 그러한 분노가 향할 방향에 있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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