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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혼한 기상, 역전적 사유로 文明을 비꼬다
웅혼한 기상, 역전적 사유로 文明을 비꼬다
  • 류병학 미술평론가
  • 승인 2006.04.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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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 김호석 展(동산방화랑, 3.15~28)

김호석의 ‘문명에 활을 겨누다’ 展이 언론의 주목 속에 열렸다가 마감됐다. 몽골을 돌아보고 와서 그린 그의 화폭은 힘있는 붓과 독특한 터치로 새로운 동양적 공간을 구현해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연결돼 논의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호석의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를 미술사적으로 다양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강요배, 박이소, 천경자 등 굵직한 개인전들이 열리고 있는 3월 동산방 화랑에서 열린 김호석 展은 (4년의 공백기간을 가진 개인전임에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붓끝에서 꿈틀거리는 유라시아”, “‘한국화의 위기’ 돌파구 보인다”….


“문명에 활을 겨누다.” 이 문구는 지난 3월 중순 동산방 화랑에서 열린 김호석 개인전의 타이틀이다. 본 기자, 지난 주말 김호석 작품들을 보고 나오면서 문득 요즘 일간지를 도배하고 있는 ‘양극화’ 논의가 떠올랐다. 외람되게도 정부의 양극화 발언에 관한 찬/반 모두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김호석의 “문명에 활을 겨누다”는 ‘문명/야만’의 양극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김호석은 ‘야생의 활’로 ‘문명의 타켓’을 향해 겨누고 있는 것일까. 김호석은 야생의 붓으로 기존 위계질서, 즉 문화/자연 혹은 문명/야만이라는 위계질서를 뒤집고자 하는 것일까. 


김호석 개인전은 국내 언론에 적잖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그 보도는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 ‘밖’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간지의 ‘생리’를 고려한다면 그것은 당연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김호석 개인전과 함께 일종의 도록으로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문명에 활을 겨누다’에 실린 평자들(시인 고은, 김형수, 미술평론가 이태호)의 글을 읽어본다면, 일간지 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그들이 그림이 아닌 그림(밖)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김호석의 그림은 “고대 바위그림처럼 설명이 없이는 읽기 어려운 장면이 너무 많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정말 김호석의 그림은 작가의 설명 없이는 보기/읽기 어려운 것일까.


“‘하늘에서 땅으로’라는 작품은 사막에서 폭설을 맞았던 소가 풀을 찾느라 언 땅에 머리를 처박은 채 죽었다가 눈이 녹자 드러난, 마치 죽지 않은 소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달리는 것 같은 자세를 그리고 있다.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언 땅에 목이 박혀서 최후를 맞이한 순간은 처절하다. 배 속은 독수리들이 파먹어서 몸통이 비어있고, 몸부림치다가 정지된 마지막 동작은 죽음 직전에 발휘된 삶의 절박함을 온몸으로 증거한다.”(김형수 ‘야생의 기억’ 중에서)


사막에서 폭설을 맞았던 소가 풀을 찾느라 언 땅에 머리를 처박은 채 죽었다? 그렇다! 그것은 지난 밀레니엄을 전후로 몽골에 닥친 영하 50도가 넘는 강추위, 즉 조드 현상 때문이었다. 당시 언론은 몽골에 1999년 9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내린 눈으로 인해 가축 2백50만 마리가 죽는 엄청난 재앙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40년만에 최악의 조드가 발생해 한 달 사이에만 60만 마리의 가축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김호석 作 ‘조드’. 96×190cm, 종이에 수묵채색, 2005 ©

김호석은 몽골을 순례하다가 우연히 조드 현상으로 인해 죽은 소를 보게 되었다. 당시 그 죽은 소는 그에게 강한 충격을 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몇 차례에 걸쳐 몽골을 찾았다. 다른 곳도 아닌 바로 그 죽은 소가 있는 곳을. 고은의 말을 빌리자면 김호석은 어느 겨울 몽골 설원에서 눈 속에 처박힌 소(의 엉덩이)를 보았다. 소의 “엉덩이 끝은 다른 짐승이 파먹”었으며 소꼬리마저 없었다. 김호석은 그곳을 이듬해 봄 다시 찾았다. “눈이 좀 녹아 소의 다리 하나가 거꾸로 치켜든 채로 드러나 있었다.” 김호석은 그곳을 여름에 또 찾았다. “아직껏 녹지 않은 눈 위로 소의 주검이 처박혀 있는 채로 처박혀 있는 채로 거지반 다 드러나 있었다.” 김호석은 뒷날의 여름 다시 그곳을 잊지 못해 찾았다. “눈 속에 처박힌 소의 주검은 온데간데없고 그 일대에 하얀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거기에 양떼들이 와서 그 이쁜 꽃과 풀잎새를 뜯어먹고 있다.”


김호석의 ‘하늘에서 땅으로’는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눈 속을 헤집고 땅 위의 풀 한포기라도 뜯어먹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박”았던 소의 동사한 모습을 몇차례에 걸쳐 보고 난 다음에 제작한 그림이다. 아니다! 그 그림은 장기간을 통해 제작된 그림이다. 아니다! 그 그림은 장기간을 드러내고 있는 그림이다.


만약 당신이 땅 속에 머리가 박힌 소의 몸체를 본다면 거친 필력과 농담을 이용한 필력 그리고 대담한 필력과 섬세한 필력이 혼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김호석은 강추위에 얼어버린 소의 모습뿐만 아니라 소의 죽음을 통해 탄생한 꽃까지의 긴 시간을 한 폭에 담았다고 말이다. 그렇다! 김호석은 비약과 전복을 통해 긴 시간을 담고자 한다. 그렇다면 김호석의 그림은 죽음/삶이라는 양극화를 전복한 것아 아닌가.


하지만 김호석의 ‘하늘에서 땅으로’에는 역설도 있다. 본 기자가 보기에 고은과 마찬가지로 김형수 그리고 이태호는 한결같이 김호석의 ‘하늘에서 땅으로’에서 바로 그 점을 간과했다. (물론 그들은 김호석의 재료, 즉 지필묵에 주목하지 못했다. ‘종이에 수묵 담채’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고 단순한 수묵이 아니라는 점을 적어도 한국화 작가라면 담방에 눈치챌 것이다.) 그것은 흔히 부차적으로 간주되는 배경이다.


배경? 만약 당신이 ‘하늘에서 땅으로’에 표현된 지평선 오른쪽 끝 부분을 본다면, 마치 실수처럼 보이는 ‘청먹’(회색에 가까운 엷은 먹색)의 자국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청먹의 자국은 마치 야생마가 두 발을 들고 ‘히힝’하고 소리를 내는 듯 보인다. 전경에는 거대한 소가 머리를 땅에 박고 있는 반면, 후경에는 동적인 야생적인 말이 있다. 이를테면 전경의 소가 죽음을 뜻한다면, 후경의 말은 생명을 상징한다고 말이다. (김호석의 ‘말은 죽어서도 함께 있네’를 보라. 죽은 말을 땅 속에 묻어 버리기는커녕 전경의 죽은 두 마리 말과 함께 후경의 아이들이 뛰논다. 죽음과 삶이 함께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김호석 作 ‘말은 죽어서도 함께 있네’, 96×66cm, 종이에 수묵, 2005. ©

김호석의 그림에는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비약과 역설 그리고 전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관객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특성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김호석은 그 특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하는 것일까. 적어도 본 기자에게 김호석의 비약과 역설 그리고 전복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호석의 ‘하늘에서 땅으로’는 “고대 바위그림처럼 설명이 없이는 읽기 어려운 장면이 너무 많다”는 아쉬움을 되돌려 먹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김호석의 그림에서 “유목세계의 총체라기보다 그 파편들의 조합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리얼리즘의 견인차인 전형성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차라리 그 전형성을 세심하게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김호석의 그림에서 “공공성의 결핍현상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성과 소멸’이라는 공공성을 치밀하게 표현한 그림(“인물이나 동물의 위치 선정과 배치, 배경처리 등”)을 꼼꼼히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작가와 평자 사이의 양극성 심화는 ‘사건(작품)’ 그 자체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김호석(1957~)은

홍익대 학부와 대학원, 동국대 미술사 박사과정을 수료한 작가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역사화, 농촌풍경화, 역사인물화, 서민인물화, 가족화, 성철스님화, 군중화, 동물화 등을 그려오면서 ‘가장 주목할만한 한국화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전통기법과 형식, 재료의 장점들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작가는 1980년대 ‘수묵운동’의 중심에 서있었고, 아파트나 도시풍경을 담아내면서 새로운 수묵의 전형을 보여줬다. 국립현대미술관의 1998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 김호석 作 ‘하늘에서 땅으로’, 189×189cm, 종이에 수묵담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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