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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백년 이어온 ‘중심-주변’ 논리…지역고전학이 한 줄기 빛
6백년 이어온 ‘중심-주변’ 논리…지역고전학이 한 줄기 빛
  • 김재호
  • 승인 2022.10.03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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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인터뷰
“지역의 번역 학문후속세대 양성해야”

“6백년간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중심-주변 프레임을 부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역고전학’ 총서를 총괄기획한 김승룡 부산대 교수(한문학과)는 지난 27일 <교수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지금 수도권 중심 논리의 역사적 근거로 제시되는 조선시대 한양 기반의 중심논리는 무려 6백년을 끌고 왔다”라며 “그런데 한양도 고려의 개성에 비하면 변방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중심-주변은 상대적 논리일 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김승룡 부산대 교수는 고려대에서 한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교수는 지역의 번역자들과 함께 총 400종의 지역고전학을 기획하고 발굴해 번역·출간할 예정이다. 사진=김승룡

지역고전학은 총 400종 발간을 목표로 영남학, 호남학, 기호학 등의 지역고전학을 폭넓게 발굴할 계획이다. 지역고전학 출간을 기획하게 된 배경에 대해 김 교수는 “‘학문적 시야의 불균형’에서 시작됐다”라며 “인간이 지닌 모든 문화적 자산을 평등하게 바라볼 시각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그는 “고전은 하나의 생명체”라며 “학연이나 지연, 혈연이나 권력 혹은 소용이 있거나 없든 그 어떤 이유로도 생명체를 차별할 근거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400종 발간은 그 자체로 어려운 연구작업이다. 김 교수는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문제는 번역을 해줄 학문후속세대가 지역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존속하고 있는 한문학과나 한문교육과의 제도적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한편, 학생들이 고전번역에 종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지역인재에 대한 지원은 최소한 인적, 교육적 균형을 이룰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단계 지역학은 아직도 ‘발견의 단계’라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영남학, 호남학, 경남학, 기호학 등 지역학들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선배학자들과 국학진흥원, 한국학호남진흥원, 경남문화연구원 등과 같은 학술기관을 통해 집중적인 학문적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역학들은 모두 특정한 지역의 시공간에서 생산된 고전을 기반으로 학문적 모색을 수행해왔고, 각각 로컬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 안에도 상대적으로 중심과 주변이 존재한다.”

 

지역고전학과 교양교육 그리고 삶의 지혜
“지역고전학은 인간학, 교양교육과 통한다”

그렇다면 지역고전학이 지니는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우리는 ‘지역’을 인간의 삶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장소,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 의해 구획되는 인간적, 인문적 영역으로 이해한다”라며 “곧 특정한 장소는 상상의 중심에 의해 주변화 된 곳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간과 공간에 의해 규정된 사람들의 삶 자체를 의미한다”라고 답했다. 특히 김 교수는 “한문고전에는 고전시대의 인간과 삶이 지혜로 녹아 있다”라며 “지역은 한글이 일상어가 된 근대 이후에도 한문고전을 생산하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지역과 고전을 하나로 엮어 지역의 모든 인문적, 인간적 생산물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한자나 한문으로 이뤄진 시문에는 고전시대 인간의 삶의 지혜가 들어있다.” 향후 10년 동안 총 400종의 지역고전학 발간을 총괄기획하고 있는 김 교수는 “교양교육은 보편적 인간성을 배우는 교육체계”라며 “전문화되고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그나마 인간은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할 것인지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고전인간학과 교양교육이 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부산대 교양교육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인간의 삶을 조망하는 균형잡힌 복안(複眼)을 갖추기 위해 한문고전이나 지역고전학은 의미가 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미래의 첨단학문을 위해 교양교육이 밀려나는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김승룡 교수가 최금자 씨와 함께 번역한 책이다. 

최근 지역고전학 총서 10종 발간에 이어, 내년 상반기에 14종이 추가로 나온다. 김 교수는 “1차 목록이 주로 영남권에 머물렀다면, 2차 목록에서는 전주, 남원, 의주, 양평, 개성 등 전라도 및 경기도, 평안도까지 확장됐다”라고 답했다. 예를 들어 청송 조수도(趙守道)의 『신당일록(新堂日錄)』, 함안 박상절(朴尙節)의 『기락편방(沂洛編芳)』, 양평 신필영(申弼永)의 『열수기행(洌水紀行)』, 개성 김택영(金澤榮)의 『숭양기구시집(崧陽耆舊詩集)』, 전주 엄명섭(嚴命涉)의 『경와사고(敬窩私稿)』, 의주 양황(梁榥)의 『용만분문록(龍彎奔問錄)』, 남원 신득구(申得求)의 『농산집(農山集)』 등이다.

마지막으로 지역고전학 기획·출간 관련 교수·대학사회에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우리는 ‘지역’에서 생성된 텍스트에 생명을 불어넣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다. 미약하지만 이후로 하나씩 이들에게 생명체로서 존재하도록 소중하게 발굴하고 겸손하게 살피며 애정으로 복원하여 미래 한국사회의 지적 자산으로 확보하기를 원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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