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2:40 (금)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06] 우리 몸과 동작에 남아있는 진화의 흔적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06] 우리 몸과 동작에 남아있는 진화의 흔적들
  • 권오길
  • 승인 2022.09.27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각근, 꼬리뼈, 충수돌기, 사랑니, 버금젖, 다윈겨절, 반달주름 움켜잡기 반사

원래 잘 쓰던 기관도 환경이 바뀌어 쓰지 않게 되면 그 기능이 녹슬고 사라지게 되니 이런 기관을 흔적기관(痕迹器官, vestigial organ/rudimentary organ)이라 한다. 또한 특정 기관은 더 쓸모가 없어져 진화(進化, evolution) 과정에서 축소 또는 퇴화해 기능을 거의 상실한 채 흔적만 남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사람의 이개근, 충수 돌기, 꼬리뼈 등을 들 수 있으니, 사람의 몸에는 지금은 퇴화해 거의 쓸모가 없어진, 흔적으로 남아있는 기관이 적어도 100개 이상이 된다는데, 그중에서 잘 알려진 몇을 살펴보기로 한다. 아무튼 인간도 긴 세월 진화한 산물이렷다! 

(1) 이각근(耳殼筋, auricularis)/이개근(耳介筋)/동이근(動耳筋) 
개나 고양이는 귀(귓바퀴)를 계속 움직이니, 이렇게 귀를 움직이게 하는 근육을 이각근(耳殼筋) 또는 이개근(耳介筋), 동이근(動耳筋)이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족보행(二足步行, 즉 직립 보행( 直立步行)을 하면서 시야가 넓어져 상대적으로 소리에 덜 민감해졌고, 따라서 귀를 움직이는 근육도 퇴화하여 흔적기관이 되었다. 물론, 이개근을 자주 연습하여 부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이각근. 사진=위키미디어

(2)꼬리뼈(미골, 尾骨, tailbone)/미추골(尾椎骨, coccyx)
개가 꼬리를 흔들 수 있는 건 꼬리뼈 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하여 영장류들(고릴라, 침팬지 등)은 꼬리가 없고, 꼬리뼈라는 흔적기관만 남았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들이 나무 위보다 지상 생활이 늘면서 꼬리가 퇴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꼬리뼈는 엉덩이 살 안에 흔적으로 남아있고, 앉아 있을 때 체중의 상당 부분을 받친다. 사람의 태아는 미추(꽁무니뼈)가 10개쯤이었는데, 나중에 미추가 융합하여 꼬리뼈를 구성하고 꼬리는 없어진다. 그래서 흔히 3cm 길이의 꼬리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 

붉은 표시로 된 부분이 꼬리뼈이다. 사진=위키미디어

(3)충수 돌기(蟲垂 突起, vermiform appendix) 
‘벌레(vermi) 모양(form)’인 ‘돌기’(appendix)인 충수는 맹장의 아래에 늘어진(垂), 끝이 막힌 가는 맹관(盲管)인데, 벌레 닮은 돌기(충양돌기, 蟲樣 突起)라고도 한다. 길이 6∼7cm, 굵기 0.5∼1cm로 새끼손가락만 하고, 여기에 염증이 생기면 충수염, 즉 맹장염(盲腸炎)이 된다. 토끼 등 순수초식 동물에서 충수 돌기는 소화 기관으로 섬유질을 분해하는 세균을 조절하지만, 사람에게서는 이런 역할이 필요하지 않아 흔적만 남았다. 그러나 심한 설사를 하거나 대장내시경을 하기 위해 설사약을 먹었을 때(내장 세균이 없을 때), 충수 돌기는 자기가 가진 내장 세균(gut bacteria)을 대장으로 내보내 장 세균의 생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또 충수 돌기가 면역 작용을 한다고도 한다. 

왼쪽 붉게 칠해진 부분이 충수 돌기다. 사진=위키미디어 

 

(4) 사랑니(지치, 智齒, wisdom teeth)  
사랑니는 큰어금니 안쪽에 난, 인간의 영구치 중 가장 안쪽에 있고, 누워서 나거나 옆 치아의 뿌리를 침투하듯 나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기도 하므로 발치(拔齒)한다. 초기 인류는 익히지 않은 먹이를 갈아 먹어야 했기에 현생 인류보다 턱관절과 어금니가 컸다. 그러나 불에 익혀 먹게 되면서 어금니의 역할이 줄어서 사랑니부터 점차 퇴화, 사라지게 되었다. 

드러누워 있는 치아가 사랑니다. 사진=위키미디어
드러누워 있는 치아가 사랑니다. 사진=위키미디어

(5) 버금젖(extra nipples/breasts)
사람은 보통 유두(젖꼭지)가 1쌍인데, 때로는 나머지 유두(乳頭)가 나타나는 수가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겨드랑이에서 젖을 지나 사타구니로 잇는 유방선(乳房線, mammary lines)에 나타난다. 한두 개에서 여러 개가, 또 클 때는 여성의 유방만큼이나 되며, 드물기는 하지만 젖이 나오는 수도 있다. 여기서 ’버금‘이란 말은 ‘두 번째 서열(second)’, ‘두 번째 위치에 있는 자’란 뜻이다.

버금젖은 남성에게도 생길 수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6)'다윈 결절'(Darwin's tubercle)/'다윈 돌기'(Darwin's bump)
'다윈 결절', '다윈 돌기'란 인간 귓바퀴의 중상위 1/3의 자리가 단단하게 두꺼워진 것(곳)을 말한다. 그런 특징은 여러 영장류에서 보이며, 그 현상은 영장류 사이에 공통 조상을 가리키는 연구를 입증하기 위해 찰스 다윈이 주장했다. 

다윈 결절. 사진=위키미디어

(7) 반달주름(plica semilunaris)
눈의 각막을 보호하는, 눈알을 덮고 있는 얇고 투명한 순막(瞬膜)은 일부 어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에서 잘 발달하였으나 포유류에는 흔적만 남아있다. 우리 눈의 구석(inside corner of the eye)에 있는 작은 반달 모양의 붉은 살 주름인 반달주름(plica semilunaris)은, ‘제3의 눈꺼풀(third eyelid)’이라 부르는 순막(nictitating membrane)이 퇴화한 흔적기관이다.

반달주름
반달주름. 사진=위키미디어

(8) 움켜잡기 반사(palmar grasp reflex)
유아(乳兒, infant)의 손바닥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아기는 순간적으로 물건을 꽉 잡는데, 이를 ‘원시반사(영아 반사, 신생아 반사)’라 한다. 이것은 다른 영장류들처럼 어머니 몸을 붙잡는 반사로 그 퇴화한 반사가 남은 것이다. 

움켜잡기 반사. 사진=위키미디어
움켜잡기 반사. 사진=위키미디어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