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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근본주의 넘어 심층 종교로
“이제는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근본주의 넘어 심층 종교로
  • 김재호
  • 승인 2022.09.2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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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오강남의 생각』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392쪽

“우리 속에 있는 신성, 불성, 인성이 하느님이 보낸 독생자”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몇 달 전 취재 차 들렀던 한 모임에서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너대 종교학과 명예교수를 만난 적 있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온화하고 조용한 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그가 한국 종교계와 종교문화 등에 촌철살인을 날리는 교수라는 사실을 『오강남의 생각』(현암사)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SNS로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민감한 사안 일 텐데 말이다. 

 

‘오강남의 생각’은 명쾌하다. ‘참나’를 찾기 위해 다양한 종교를 이해하고 수용할 줄 알아야 하며, 표층적인 교리에서 심층적인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우리 종교문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전광훈 목사라는 사람이 종교를 이용해 배타적인 정치 행위를 하는 것도 모자라, 500억 원이나 챙기는 부동산 ‘알박기’를 했다는 사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오 교수는 “이제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형국이 되고 있습니다(57쪽)”라고 일갈했다. 

특히 기독교에서 나타나는 근본주의는 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오강남의 생각』 196∼197쪽에서 오 교수는 “한국 기독교인의 95퍼센트 이상이 근본주의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만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믿고 이웃 종교에 대해서는 알아볼 필요도, 대화할 필요도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이웃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출교당한 감리교신학대 변선환 목사/교수님이나 기독교 교인이 불교 사찰에 들어가 기물을 파소한 것을 보상하기 위해 모금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서울기독대의 손원영 목사/교수님이나 불당에 가서 부처님께 절했다고 교수직을 잃은 강남대 이찬수 목사/교수님 같은 희생자가 계속 나오게 됩니다”라고 적었다. 

 

씨알 함석헌과 다석 유영모의 심층 종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살아남는다.” 씨알 함석헌(1901∼1989)의 이 문장은 오강남 교수의 책에서 자주 인용된다. 그 뜻은 종교 역시 다른 종교의 말들을 귀담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은 깨우침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함석헌이나 다석 류영모(1890∼1981)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만으로 희망이 있다. 이들은 심층 종교를 주장하며 다양한 종교를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다석 유영모의 경우,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이는 오강남 교수의 설명이다. “일반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는데, 류영모 선생님은 하느님이 그의 씨를 각 사람의 마음에 심으셨다는 뜻으로 풀이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신성, 불성, 인성이 하느님이 보낸 독생자인 셈입니다.” 오 교수는 “십자가를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신 상징으로 여기는데, 류영모 선생님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는 삼재(三才)로 풀어 사람(ㅣ)이 땅(ㅡ)을 뚫고 하늘(•)을 향해 올라감의 상징이라고 본 것”이라고 밝혔다.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일까, 인간이 종교를 구원해야 할까. 내 안의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진=픽사베이

『오강남의 생각』을 통해 기자가 깨달은 바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그동안 나름 공부를 통해 믿고 있었던 범신론을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유재신론’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신의 내재만을 강조하면 범신론에 빠지고, 신의 초월만 강조하면 초자연주의 유신론에 빠지게 됩니다”라며 “신은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이라는 역설의 논리로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내재와 초월이 동시에 수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빛이 마치 입자이자 파장인 것처럼 말이다. 무언가의 속성을 언제나 분리하려고만 했던 습관을 떨쳐버리는 게 필요하다. 

또 하나는 ‘두 종교 교인(dual membership)’이나 ‘세 종교 교인(tripple membership)’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다. 무엇을 믿느냐는 것인데, 질문에는 ‘하나만 선택해 주세요’라는 강요가 포함돼 있다.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해 당당하게 “나는 불교와 기독교를 믿으며, 힌두교는 더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왜 답할 수 없는 것일까. 조합될 수 있는 종교의 가짓수는 훨씬 더욱 많다. 맥스 뮐러(1823∼1900)라는 학자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다원주의적 심층 종교가 필요하다. 

 

예언자는 ‘미리’가 아니라 ‘위하여’ 말하는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더 편견을 깰 수 있었던 건 ‘예언자’라는 단어의 뜻이다. 흔히 예언자라고 하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선지자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타로 카드를 보거나 점집을 찾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불안한 미래를 선명하게 바꿀 수 있는 예언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예언자를 신약에서는 ‘미리(pre) 말하는 자’라는 뜻의 ‘prephets’가 아니라 ‘위하여(pro) 말하는 자’라는 ‘prophetes’”이라며 “한국어로 이 성경의 ‘예언자’를 한자로 쓸 때는 미리 말한다는 뜻의 ‘豫’言者가 아니라 맡겨진 말을 한다는 ‘預’言者”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을 깨닫는 것이 바로 예언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타로 카드나 점집은 개인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지 미래를 맞추는 게 아니다. 

오 교수는 종교학의 세 가지 특성으로 △과학적 접근 △역사적 접근 △비교적 접근을 제시했다. 그는 “신앙은 ‘이성을 넘어서는 것(supra ratio)’이지 ‘이성을 거스르는 것(contra ratio)’이 아닙니다”라고 적었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폴 틸리히(1886∼1965)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면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32쪽)”라고 말한 바 있다. 종교는 문자가 아니라 내 안의 신성을 깨우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예수의 부활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과 일맥상통한다.  

오강남 교수는 달라이 라마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종교뿐만 아니라 과학,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곱씹어 볼 말이다. 

“이제 인류는 개별 종교들이 제시하는 종교적 윤리가 아니라 종교와 관계없이 인간의 내면적 양심에 근거한 ‘세속적’ 윤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제 인과응보 때문이 아니라 윤리적 삶 자체가 기쁨이라는 의식을 북돋워 주는 성숙한 종교, 심층적 종교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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