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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의 부상…학문적 관심 전환 노력 필요” 
“K-컬처의 부상…학문적 관심 전환 노력 필요” 
  • 현수진
  • 승인 2022.09.28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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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만난 한국학 ④ 인터뷰_이찬희 소아즈 런던대학 박사과정

“결국 양적, 질적인 학술발전에 장학금 지원이 중요합니다.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한 연구자들 중 
박사 펀딩이 없어서 박사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한국에 학술 교류의 장이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요? 
소아즈 한국학과는 학부 및 석사과정 중 한국을 방문해야 하는데요. 
이런 후속세대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어떤 지적 자극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 같아요.”

지난 세 차례의 연재를 통해 영국의 한국학 연구 동향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영국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문후속세대의 입장에서 양국의 학문후속세대 양성 제도와 문화 등에 대한 현장 이야기를 공유한다. 지난달 20일, 런던 킹스크로스역 근처 카페에서 소아즈 런던대학 박사과정 이찬희 씨(한국학·사진)를 인터뷰했다. 이 씨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서구와 문명에 대한 ‘감정(emotion)’이 이후 한국의 근대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찬희 씨는 런던대 소아즈(SOAS) 한국학과 박사과정에 있다. 성균관대 사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런던대 소아즈에서 향화인에 대한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감정의 역할과 감정관리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사진=현수진

△ ‘감정사(History of Emotions)’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감정사는 감정이 개인적인 것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합의 위에서 진행되는 역사학의 한 연구 분야입니다. 감정이 표현되고 억제되는 방식, 특정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을 공유합니다. 감정이 역사적 변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밝히는 상당히 큰 연구 주제인데요. 감정사의 역사 자체가 길지 않아 현실적으로는 특정 시기와 역사적 현상 속 개인의 감정관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이 연구를 위해 소아즈를 선택한 이유는.
“인문학 전통이 탄탄하고 박사과정생으로서 연구에 많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영국을 선택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소아즈를 선택하는 게 당연했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 한국학, 특히 한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적거든요.”

△ 영국에서는 학자를 양성할 때 무엇에 중점을 두나요.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학계의 최소 기준치를 충족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해낼 역량이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내 문제의식이 무엇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방법론과 자료를 사용했는가, 내 논지를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학술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가에 집중합니다. 결국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학술적인 문제의식을 세우고 답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양국의 학문후속세대 양성 시스템에 다른 면이 있다면.
“영국 박사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수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사과정 동안 연구 주제를 탐색할 시간이 있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입학할 때부터 본인의 연구 주제와 방법론적 방향을 비교적 명료하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철저한 도제식 지도 방식은 양국 대학원이 유사해서 영국에서도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다만 한국과 비교해 봤을 때 1:1 지도가 제도적으로 좀 더 보장돼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별도의 부서가 박사과정 지도가 잘 이루어지는지 철저하게 관리하고요.”

△ 교수-대학원생 간의 위계 차이로 인한 폭력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는지요.
“영국에서는 지도교수가 박사과정생을 동등하고 독립적인 연구자로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논리적 비약을 지적하거나 참고문헌을 추천하는 등의 서포트는 이뤄지지만, 학생의 아이디어는 온전히 학생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가 위계를 이용해 학생을 부당하게 대우한다면 학생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는 한국에 비해 훨씬 열려 있는 것 같아요. 과정 중 지도교수를 변경해도 차후 학업에 지장이 오지 않고요. 물론 한국에도 지도교수를 바꿀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최근에는 K-Drama, K-Pop에 대한 관심에서 한국학 전공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관심이 소비적으로 끝나도록 놔두지 않고 학문적 관심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사진= 현수진

△ 한국에서는 같은 지도교수 아래에서 공부하는 동료 집단이 중요하잖아요. 영국의 동료 집단 문화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공계 박사과정 친구는 한국처럼 랩실에 출근하며 연구합니다. 그런데 인문계 대학원 동료 집단은 한국과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주는 경향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런 분위기가 없는 듯해요. 같은 지도교수 아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서로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교수 성향에 따라 교수와 제자들 간 친목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중요한 건 서로 가르치거나 적나라하게 비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좀 아쉽기는 해요. 왜냐하면 인문학은 적극적인 피드백이 오가는 와중에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해서요.”

△ 양국 대학원의 장점을 비교한다면.
“한국은 박사논문이 학계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준이 확고한 편이고 글이 학술적인 완성도를 가질 가능성이 큰데요. 반면 영국에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학술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글 안의 논리에 문제가 없다면 그걸 건드리지는 않으니까 독창성 면에서 좀 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 요즘 학문후속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요. 영국의 박사학위 취득 후 진로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학계에 남기를 원한다면 한국하고 비슷해요. 포닥이나 리서치 펠로우를 하며 전임교원 채용에 도전하는 방식입니다. 전업 연구자로 살면서 불확실성을 피할 수는 없고요. 다만 제가 의외였던 점이 여기는 박사과정을 하는 친구들이 모두 학계에 남겠다고 하지는 않더라고요. 전공과 무관한 취업도 흔한 편이고요.”

△ 대학원 석박사 과정 중에는 어떻게 생활하나요. 
“일단 인문계 장학금이 이공계에 비해 확연히 적은 것은 한국과 동일하고요. 국가 장학금, 학교 장학금이 있기는 하지만 타전공과도 경쟁을 해야 하고, 결국 자비를 통해 충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건 한국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듣기로 영국은 옥스퍼드와 캠브릿지에 대부분 장학 지원이 집중되어서, 아무래도 그 학생들에게는 장학 기회가 좀 더 많다고 하더라고요.”

△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갈까요. 최근 유럽에 K-컬처의 부상이 두드러지는데요. 이런 분위기가 향후 본인의 경력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제 경력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유럽의 한국학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현상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근에는 K-Drama, K-Pop에 대한 관심에서 한국학 전공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관심이 소비적으로 끝나도록 놔두지 않고 학문적 관심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래야 미래 한국학 연구의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를 위해 한국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결국 양적, 질적인 학술 발전에 장학금 지원이 중요합니다.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한 연구자들 중 박사 펀딩이 없어서 박사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박사학위를 하면 한국학 연구자로 남을 텐데요. 또 한국에 학술 교류의 장이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요? 소아즈 한국학과는 학부 및 석사과정 중 한국을 방문해야 하는데요. 이런 후속세대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어떤 지적 자극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현수진 객원기자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 수료. 소아즈 런던대 방문학자를 거쳤다(2021.09.~2022.08.). 신진 역사연구자 모임인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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