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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런처럼 유연하게 일상을 즐기자”
“뉴런처럼 유연하게 일상을 즐기자”
  • 김재호
  • 승인 2022.09.27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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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⑰ 이혜경 존스홉킨스대 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성장을 하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사회에 전달되길 기대한다. 열일곱 번째는 이혜경 존스홉킨스대 교수다.

이혜경 존스홉킨스대 교수(신경학과)는 이 학과의 첫 한국인 교수이자 ‘마인드/브레인’ 연구기관 내 첫 여성 교수이다. 이 교수는 존스홉킨스대에서 테뉴어를 받기도 했다.

 

이혜경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연세대 생물학과에서 학사를 하 고, 미국 브라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메릴랜드 대 생물학과 조교수를 지냈다. 사진=WISET

이 교수는 뇌 가소성 분야 전문가다. 이 교수는 뇌 가소성에 대한 일반인의 상식 중 가장 큰 편견을 ‘뇌세포는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를 꼽았다. 그는 “뇌 가소성에서 가소성은 플라스틱처럼 유연성이 있고 바뀔 수 있다는 의미”라며 “우리 신경계가 그냥 고정되는 게 아니고 경험 위에서 계속 바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보통, 뇌 구조 또는 뇌 세포 간의 연결, 뇌 회로라고 한다. 그것들이 경험에 의해서 바뀌고 그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과정에서 변형이 생긴다”라면서 “그래서 우리의 기억, 행동 등 모든 것들이 다 뇌 세포 간의 연결이 실시간으로 바뀌면서 저장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신경세포는 사실 절대로 많이 자라지 않는다. 한번 세포가 생기면, 그 세포들을 가지고 뇌를 사용한다”라며 “그런데 뇌세포 수가 고정돼 있어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뇌세포 간의 연결, 즉 시냅스는 수없이 만들어진다”라고 밝혔다.

이 교수가 연구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배움의 기쁨, 호기심의 충족이다. 연구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새로운 발견을 할 때의 희열을 느낀다. “처음 신경과학 분야에 들어간 것은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 그게 궁금해서였다. 기억이나 경험이 뇌에 저장된다. 그렇다면 경험은 어떻게 뇌 회로를 바꿀까? 그렇게 바뀐 회로는 어떻게 다시 저장이 될까? 그걸 연구 중이다.”

이 교수가 발표한 50편 이상의 논문 주제에는 ‘시각과 뇌’에 대한 연구가 많다. 그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매우 명쾌하게 설명했다. “시각 피칭 분야는 연구가 활발하다. 실험하기 쉬운 분야라는 뜻이다. 노벨상을 받은 박사들이 초기 1960∼1970년대 사이 많은 논문을 썼다. 시각 피칭이 어떻게 시각에 의해서 바뀔 수 있는지, 구조가 어떤지, 기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미 많다. 그리고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시각에 굉장히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 그래서 거꾸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연구도 많다.”

이 교수에게도 실패의 순간이 있었다.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라 예상했던 연구 인생에서 맞은 최초의 위기 앞에서 잠시 무너지기도 했다. 이 교수는 “대학원에서 구두시험을 통과해야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는데 탈락했다”라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 얘기를 친했던 여자 교수한테 했더니 막 웃으며 본인도 실패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여기서 큰 용기를 얻었다.

 

시험 탈락한 후 여성 교수에게 용기 얻어

지금 이 교수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여전히 연구다. 발견의 기쁨. 그 기쁨 때문에 계속 과학을 연구하는 것이다.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면 ‘이게 정말 된 건가?’ 고민을 하는 순간이 굉장히 기분이 좋다. 그리고 제자들과 연구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가장 기억에 남은 논문으로 자신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인 마크 베어 박사와 노벨 물리상 수상자인 리언 쿠퍼 박사가 1987년에 공동으로 『사이언스』에 발표한 「시냅스 변형 이론의 생리학적 기초(A Physiological basis for a theory of synapse modification)」를 꼽았다. 이 논문은 뇌 가소성이 언제나 똑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난 경험으로 바뀔 수 있다고 이론적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즉, 똑같은 경험을 해도 뇌 신경회로가 바뀌는 기작이 그 전에 어떤 경험이 기억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이 논문은 신경생물학자가 이론물리학자와 함께 일하면 뛰어난 이론으로 학문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미 뇌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이 교수에게도 남은 목표가 있을까? 이 교수는 뇌 가소성으로 배운 진리를 인생에 적용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치 뇌처럼 인생도 그것에 적응하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것이 이혜경 개인, 그리고 연구자 이혜경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법처럼 보였다.

“살다 보니까 목표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둬야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삶을 살 때 매일매일 행위에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삶에 의미가 있다. 목표는 고정된 게 아니라 뉴런처럼 유동적이어야 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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