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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외국어를 가르쳤을까?
누가 나에게 외국어를 가르쳤을까?
  • 홍수민
  • 승인 2022.09.26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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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홍수민 시드니대 문화학 박사과정
홍수민 시드니대 문화학 박사과정

건강 문제로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나는 방 안에서 홀로 자랐다. 우연히도 집에는 영어와 일어로 된 놀거리가 넘쳐났다. 그러다 보니 내겐 한국어로 대화할 실제 친구보다 스크린과 책 속에서 영어로, 일어로 말하는 가상의 친구들이 더 많았다. 내게 '외국어'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자연스레 한국어, 영어, 일어를 구분 없이 섞어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 중 영어와 일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인 "외국어는 어떻게 배우셨나요?"는 늘 나를 곤란하게 한다.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외국어를 가르쳤을까? 사실 '누구'보다는 '무엇'이 주체일 때 답하기 더 수월한 질문이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무엇’과 '가르치다'는 주어와 술어로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다. 누군가는 내가 간접적으로 언어교육을 받았거나 교재를 '사용'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틀렸다. 나의 친구들은 교육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나는 교재를 '사용'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무생물 주어를 허용하지 않는 언어에서 내 외국어 선생님은 언제나 유령이 되고 만다.

또 다른 접근법도 있다. '가르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경우다. 언어습득의 선천성과 후천성은 시대를 뛰어넘어 만인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온 연구 주제이다. 대표주자로 이집트의 프삼티크 1세가 있다. 헤로도토스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그는 언어가 선천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두 명의 아기를 격리된 환경에서 자라게 했다. 살아있는 아이를 인위적으로 특수한 환경에 놓았다는 고대의 실험 방식은 그 동기부터가 매우 의문스럽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으니 이해를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검증하고 싶은 것은 바로 발달과정에 있는 사춘기 연령의 인간에게 문명이 미치는 영향이다. 최대한 엄밀하게 검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다른 문명들을 구성한 다음 다수의 청소년들을 이들 다른 환경들에 노출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목록화하고 그것들의 영향을 연구할 것이다.” 1928년에 출간된 수많은 명저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한 권,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의 『사모아의 청소년(Coming of Age in Samoa)』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문화학이나 인류학 전공자뿐 아니라 학문적 글쓰기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사모아의 청소년』은 필독서다. 페이지를 넘기면 자신의 연구 주제와 관련된 선행연구를 훑으며 본질주의적이고 미국 중심적인 기존의 접근방식에 의문을 품고 끝내 왜 자신이 택한 방법이어야 하는지 설득하고 마는, 학술적으로 몹시 정연한 서론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미드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관한 최신 연구, 그러니까 심리학과 교육학, 사회철학적 접근을 개괄하며 어떠한 접근법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당연하다. 피아제(Jean Piaget)가 본격적으로 아동 관련 연구를 시작한 것이 1920년대이며 『아동의 탄생』을 쓴 아리에스(Philippe Ariès)가 태어난 해가 1914년이다. 현대인에게 익숙할 아동·청소년에 관한 지식은 이 무렵 존재하지도 않았고 현대적 아동관은 인류 모두에게 새로웠다.

그래서 엉뚱한 것들이 등장한다. 1904년, 심리학자인 홀(G. Stanley Hall)은 저서 『청소년기(Adolescence)』에서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문화적 환경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종적 과거와 발달단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미드에 의하면, 또 다른 간단한 답을 던져 놓으려는 사람들은 청소년들이 지닌 불안의 징후를 ‘신체적 발달의 한 시기에 나타나는 특성’으로 정의했다. 어느 쪽이든 다분히 본질주의적이다. 미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험을 거쳐야만 결론에 도달하는 신중한 심리학자들’ 역시 이들과 같은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실험이 없고, 표본이 없고, 데이터가 없는데 무슨 결론이란 말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직접 결론을 내기엔, 그들에게는 실험실이 없었다. 실험실이 존재하기는 불가능했다. 미드가 말했듯 “아기들을 격리시켜 실험결과를 기록하는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실험용 격리구역은 가능한 접근 방식이 아니다.”

이집트의 왕과 달리 미드는 인류학자의 방법을 유일한 해결방안으로 여겼다. 여기서 인류학자의 방법이란 오늘날의 문화기술지(또는 민족지)에 해당하는 방법론으로, ‘다른 지역에 가서 다른 문화적 조건에 놓인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다. 가령 그는 사모아 지역의 소녀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내며 그들 가족의 규모, 지위와 재산, 성 경험 정도 등 최대한의 상세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 그들 자매의 삶, 그들 양육자의 삶을 면밀히 관찰하며 그들이 처한 사회적 배경, 삶의 경로와 해결해야 할 문제들, 문제해결을 도와줄 가치들에 대해 연구했다. 미드는 사회적 환경에 의해 좌우될 만한 청소년들의 태도로 권위에 대한 도전, 철학적 혼란, 이상주의의 만발, 갈등 및 투쟁 정도를 꼽았다. 그들은 왜 권위에 도전할까? 왜 기존 질서에 혼란스러워할까? 왜 이상을 꿈꿀까? 왜 갈등하고 투쟁할까? 이러한 질문에 오늘날 우리는 쉽게 답할 수 있다. 차별과 억압. 모두 1920년대에 미드가 먼저 내린 결론 덕분이다.

2020년대를 사는 나는 아동문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다. 내게 가르침을 주는 그 어떤 것도 인간에게 본질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본질적으로 외국어에 능하다거나 그럴 만해서 해외에 나와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테다. 나는 외국어를 모르는 가족들 사이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이 지닌 모든 것을 처분해도 내 학비를 감당할 순 없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들이 가르쳐준 언어로, 눈에 보이지 않는 납세자들이 만들어낸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한다. 내가 사회 속에서만 성립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도 선명하다. 그럼에도 가끔 머릿속에서 이 사실이 희미해질 때, 건방지고 교만하여 모든 것을 혼자 이뤄낸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되묻는다. 누가 나에게 외국어를 가르쳤을까?

홍수민 시드니대 문화학 박사과정
아동문화·소비문화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일본 사이타마대에서 「토에이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50년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호주 시드니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를 썼다. shon8082@uni.sydney.edu.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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