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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녹색’ 생산하면 뭐하나…제도 안 변하면 도루묵
아무리 ‘녹색’ 생산하면 뭐하나…제도 안 변하면 도루묵
  • 전준
  • 승인 2022.09.22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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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과학 ① 녹색화학

과학이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과연 어떤 안목이 필요할까. 과학은 이해하기 힘들고 때론 소통이 힘들 때도 있다. 이에 화학을 공부하고 과학기술정책학을 전공한 전준 충남대 교수가 ‘과학의 과학’을 연재한다. 이 연재는 과학기술을 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성찰하고자 한다. 첫 회는 녹색화학을 다룬다. 다음 문장에 눈길이 간다. “사회는 과학을 배태하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만들어진 과학에 의해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촉매를 이용해 반응 효율성을 최대 높이는 녹색화학
생산공정 효율화 해도 소비재의 총량으로 폐기물 늘어

환경 위기를 일상에서 점점 체감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힌남노를 비롯해, 매년 강도를 더해가며 반복되고 있는 홍수와 폭염은 자연의 파괴적인 힘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경 교란을 불러 일으키는 인간 사회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은 전 세계 국가들의 공통 관심사다. 특히 코로나-19를 환경 재난으로 규정하는 국제적인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ESG 경영, 즉 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있어서의 기업의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경과 기업,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오랜 목표였다.

녹색화학은 바로 이러한 다면적인 지속가능성을 성취하기 위해 고안되기 시작한 과학 분야이다. 녹색화학은 새로운 화학 합성 기법을 통해 오염을 최소화 하는 동시에 화학 반응의 효율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 분야이다. 녹색화학이 본격적으로 그 이름을 얻게 된 계기로는 1990년에 재정된 오염방지법의 일환으로 미국 환경보호국에서 수행하였던 ‘오염 방지를 위한 대체 합성 경로 연구’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과학의 측면에서 아무리 녹색 생산공정이 잘 이루어져도, 사회의 측면에서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이미지=픽사베이

미국 정부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개별 물질의 유독성을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염물질 생산을 규제하던 입장에서 선회해, 경제와 환경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1990년의 오염방지법은 이러한 정책 기조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오염을 방지하되,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효율적인 생산 공정을 신업계가 도입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방식의 자발적인 규제를 도입했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과학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환경보호국은 이러한 목적의 연구 프로그램을 확장해 녹색화학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녹색화학은 수백만 달러 규모의 연구비를 환경보호국을 통해 지원받으며 그 태동기를 알렸다.

초기에 녹색화학에 공헌했던 학자들은 일군의 유기화학자들이었다. 특히 효율적인 합성 경로를 찾기 위한 촉매 개발 등에 힘쓰던 화학자들에게 녹색화학은 일석이조의 연구 분야였다. 즉, 자신들이 이미 오랫동안 천착해 오던 화학 반응 효율성에 대한 문제를 친환경성을 위한 목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녹색화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예일대의 폴 아나스타스 교수가 1998년에 발표한 ‘녹색화학의 12가지 원칙’을 보면 ‘오염 방지’나 ‘덜 위험한 합성’과 같이 녹색화학의 친환경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원칙들도 있지만 “원소 경제성”이나 ‘촉매’, ‘파생물질 줄이기’ 등 전통적인 유기화학자들의 연구 목적과 일관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원칙들도 존재한다. 실제로 2005년 이브 쇼뱅, 리처드 슈록, 로버트 그럽스가 공동으로 복분해 반응(Metathesis)에 대한 연구 업적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을 때,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이들의 촉매 연구를 두고 “녹색 화학에 큰 진보를 가져왔다”라고 평했다. 녹색화학의 급격한 성장의 배경에는 이와 같이 변화하는 정부의 환경 정책 기조 뿐 아니라, 반응 효율성을 끌어올리고자 오랫동안 노력해왔던 촉매 연구자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환경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화학자들의 공헌이 있었다.

녹색화학과 유기화학을 관통하는 가장 대표적인 연구 주제로는 비대칭 합성을 들 수 있다. 화학 반응을 통해 분자를 만들어 낼 때 발생하는 원치 않는 부산물들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것은 모든 화학자들의 공통된 관심 주제이다. 이중에서도, 서로 거울을 마주보고 있는 것 같은 대칭적인 두 분자를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하는데, 비대칭 합성은 이중에서 생산자가 원하는 한 가지 종류의 분자만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합성 기법이다. 2001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던 료지 노요리와 베리 샤프레스가 이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이들은 모두 녹색화학 분야에도 큰 공헌을 했다. 노요리는 녹색화학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지기 전부터도 이미 자신과 동료 연구자들은 다양한 촉매들을 활용해 폐기물 발생을 최소로 하는 고효율 분자 합성을 위해 연구해 왔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샤프레스는 환경보호국으로부터 녹색화학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바 있고, 이를 통해 물을 용매로 사용하는 비대칭 합성 기법에 대한 논문들을 출간하기도 했다.

최근 국제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연구 분야는 빛을 촉매로 활용하는 기법이다. 빛을 활용하면 기존에 활용되던 유독성 촉매들을 대체하면서도 더욱 높은 수준의 선택성을 갖는 화학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202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프린스턴대의 데이브 맥밀런, 그리고 그의 제자인 위스콘신대학 윤태식 교수 등이 이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다. 맥밀런 교수는 광촉매 뿐 아니라, 순수한 유기물질로만 이루어진 비대칭 촉매 연구에 크게 기여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유기촉매는 금속이온과 유기물질의 착화합물로 이루어진 촉매들에 비해 가격이 압도적으로 저렴해 실용성이 높다. 맥밀런 교수는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촉매 화학이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필수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화학 반응의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지속가능한 사회가 자동적으로 도래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환경사회학자들은 생산 공정의 효율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사회가 소비하는 소비재의 총량이 증가함에 따라, 폐기물의 양은 줄어드는 대신 오히려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생산 공정이 아무리 ‘녹색’이 되어도, 그것을 작동시키는 사회 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사회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녹색화학의 태동이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 싶어 했던 미국 정부의 친 시장적 행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상기해 보면, 사회는 과학을 배태하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만들어진 과학에 의해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전준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 석사를 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과학기술사회학, 환경사회학, 사회이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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