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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4] 그럼 국뽕의 반대는?
[한민의 문화등반 44] 그럼 국뽕의 반대는?
  • 한민
  • 승인 2022.09.20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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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4

 

한민 문화심리학자

상전벽해다. 뽕밭이 변하여 바다가 되었다. 아니, 벽해상전(碧海桑田). 바다가 변하여 뽕밭이 되었다. 국뽕이다. BTS가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거나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전세계 1위를 기록할 때, 손흥민이 EPL 득점왕이 될 때, 한국 문화나 한국 제품이 전세계에서 높은 인기를 끌 때 우리는 주모를 찾는다. ‘국뽕 한 사발’을 내올 주모다. 

국뽕은 나라 국(國)에 히로뽕(필로폰)의 뽕을 합친 말로 나라에 대한 자부심에 과도하게 도취된 상태를 말한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국뽕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있다. 한국인의 성취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이들과 지나친 애국주의는 해롭다는 관점이다. 

아직 젊은 나이의 필자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국뽕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외국에서 교육을 받고 외국 문물을 접한 분들 중에는 ‘한국은 안돼’를 입에 달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다. 높은 확률로 특정 직업군이었던 것 같다. 이 글에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그분들은 한국적인 어떤 것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국수주의에 갇힌 편협한 생각”이라며 쌍심지를 돋우셨는데 그 반대쪽에는 항상 글로벌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어떤 나라가 제시돼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한국사람이 한국적인 것을 언급(연구)하는 것이 국수주의라면 한국사람이 한국적인 것을 혐오하는 것은 무슨 주의라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국뽕을 경계하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자국에 대한 과도하고 맹목적인 애국심은 국수주의 또는 쇼비니즘(chauvinism)이라 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무시와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지는 세계사를 보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는 ‘주모 찾기’ 현상이 맹목적 애국심이나 국수주의의 발로일까? 한국과 한국문화만이 우수하다고 믿는 한국인들은 결국에는 나치스러운 당을 만들고 히틀러스러운 인물을 내세워 세계를 3차 세계대전으로 끌고 들어갈까? 세계사적인 흐름을 보나 한국인들의 문화심리적인 특성을 보나 별로 그럴 거 같지는 않다. 

국뽕을 경계해야 하는 경우는 그것이 맹목적이 될 때다. 다시 말해 객관적 자기 인식을 하지 못하고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고 그러니까 너희들은 못났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자기객관화가 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자기만 옳다고 믿고 다른 이들을 자신을 위해 희생해야 할 도구로 여긴다. 국뽕은 이때 국수주의(쇼비니즘)가 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모든 국뽕이 국수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뽕에는 집단 자존감(collective self-esteem)이라는 아주 중요한 동기가 내재되어 있다. 자존감(self-esteem)의 중요성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또 그래야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개인의 자존감이 개인의 심리적 적응에 그렇게 중요한데 집단 차원의 자존감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유난히 집단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있다. “한국인들은 안돼”를 입에 달고 살며 객관적이라는 명목하에 내집단 깎아내리기를 서슴지 않는 분들이다. 이분들은 과연 어떻게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있을까. 사회정체성 이론에는 정체감 관리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정체감 관리전략은 개인차원의 전략과 집단차원의 전략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이분들의 전략은 개인차원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집단 자존감이 떨어지면 집단차원의 전략을 사용하는 이들은 내 집단이 더 나은 집단이 되길 바라며 그쪽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개인차원의 전략을 쓰는 사람들은 내집단과의 관계를 끊고 개인적 정체감, 다시 말해 개인차원의 자존감만을 유지하려 한다. 나는 이 집단과 이 집단 구성원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 철저히 외부자의 시선으로 내가 속했었던 집단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자존감의 유지는 중요한 사안이기에 집단보다 개인을 선택한 그들의 심리과정 또한 이해는 간다. 그러나 어떤 집단에 대한 정체감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런 분들은 좀 껄끄럽다.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 우리를 등질 사람이라는 것이 뻔하니까. 역사적으로도 그래왔고.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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