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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다툼은 학계에서
연구윤리 다툼은 학계에서
  • 손화철
  • 승인 2022.09.20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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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표절은 학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이슈다. 표절 검증은 학술단체가 아니라 언론이 하고, 표절을 피해야 할 사람은 학자가 아니라 권력에 접근하는 자다. 2005년 황우석의 줄기세포 사기 사건 이후 ‘연구윤리’라는 말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 이후 일어난 연구윤리나 표절 시비는 연구자보다 정치인, 연예인, 대학 총장이나 장관 후보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2006년 교육부총리에 임명되었다가 사퇴한 김병준 씨 경우가 기억나는 첫 번째 사례이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 10년도 더 지나 얼결에 정치인 배우자가 된 김건희 씨의 이런저런 표절 의혹이 최근 사례다. 전자가 좀 억울했고 후자가 좀 우습다 하지만, 정치 이슈인 건 마찬가지다. 

표절은 학문 세계의 반칙인데 정작 문제는 외부에서 불거지고, 그 와중에 학계의 의견은 별 영향력이 없다. 이는 마치 축구 경기에서 누군가 오프사이드로 골을 넣었는데도 그냥 넘어갔다가, 해당 선수가 은퇴하여 식당을 차릴 때 이웃 식당이 그 반칙이 문제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황당한 다툼 끝에 당시 비디오로 잘잘못을 가리자는데, 이번엔 축구 심판이 아닌 지나가던 행인한테 묻는다.

학계가 이렇게 무시를 받게 된 건 결국 대학과 학술단체, 학자의 잘못이다. 학문 세계 내의 연구 부정에 충분히 엄격하지 않았고, 충실한 지도 없이 돈을 받고 학위를 마구 팔기도 했다. (아, 이 땅에 박사가 얼마나 많은가!) 정치권과 언론이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거나 덮을 때 연구 부정의 최종 판단이 학계에 있음을 주장하지 못했다. 황우석 사건만 해도 문제 제기부터 마무리까지 언론이 다 했고, 학계는 뒷북만 치다가 제대로 된 징계도 없이 흐지부지 상황을 종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구윤리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다. 위조, 변조, 표절, 부당한 저자 표기가 왜 심각한 연구부정인지 명확하고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지도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없어 보인다. 그나마 연구윤리 지침을 앞장서 만들고 교육에 열심인 것도 학술단체가 아닌 교육부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연구비를 볼모로 강제하는 관 주도의 교육은 한계가 있다. 대학은 영혼 없이 주어진 의무 교육을 수행하고, 교육부는 의심의 눈으로 감시와 참견을 하는 식이다.

연구 부정의 판단을 대학이나 학술단체가 한다지만 형식에 불과하다. 무슨 사건이라도 터져서 언론이 미리 답을 정하고 여야가 싸우기 시작하면 학계는 그저 눈치나 볼 뿐이다. 그러다 소음이 가라앉으면 논란의 종착점은 또 법원이다. 학자는 아니지만 모든 걸 아시는 판사가 연구 부정을 척척 가려준다. 무슨 삼권분립처럼 연구윤리 문제를 둘러싼 다툼은 입법부에, 교육은 행정부에, 최종 판단은 법원에 고루고루 위임한 셈이다.

그럴듯한 학위는 얻고 싶으나 뭘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학생이 저지른 연구 부정이 과연 그 혼자의 잘못인가? 무작정 감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를 가르쳐야 했던 학계가 정치인과 언론의 무자비한 조리돌림에 편승하는 것은 민망하다. 지금이라도 대학과 학술단체가 연구윤리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진정성 있는 연구윤리 교육과 좋은 연구 문화의 정립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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