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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든 뺨, 멍든 대학원생 인권
멍든 뺨, 멍든 대학원생 인권
  • 최동혁
  • 승인 2022.09.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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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최동혁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뺨 맞은 것도 이렇게 큰 뉴스거리가 돼?”

얼마 전 카이스트의 한 교수가 대학원생의 뺨을 때렸던 일이 뉴스에 크게 보도된 일이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해 동료 대학원생의 상당수는 언론 보도에 이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학과마다 재떨이 잘 던지기로 유명한 전설의 교수 한두 명씩은 꼭 있는 대학원 사회에서 대학원생 뺨을 때린 것으로 이렇게 큰 여론의 반향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대학원생의 처우를 조소하는 농담이 유행하고, 대학원생 인권 침해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만이 아니라지만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대학원생에게 씌워진 불행의 굴레가 벗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필자는 대학원생의 인권 침해 유형이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첫 번째는 성폭력, 두 번째는 폭언 및 폭행, 세 번째는 사적 인력 동원, 네 번째는 방치이다. 인건비, 휴식권 문제 등도 인권문제의 큰 줄기이지만 개인 간의 문제로만 한정하도록 하겠다. 네 가지 유형 중 성폭력, 폭행 등은 심각하지만 사례는 줄고 있는 유형이고, 사적 인력 동원이나 방치는 심각하지는 않지만 대학원 사회에 만연한 유형이기에 모두 적극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는 2004년부터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 전체 대학원 재학생 6천000여 명 중 매년 1천000명 넘게 응답하는 조사로 전국 최대 규모의 대학원생 대상 설문조사이다. 이 조사에서 확인된 대학원생 인권 침해 실태를 데이터로 확인하고 그 원인을 진단해 보고자 한다.

① 성폭력
2021년 한 해 동안 카이스트에서 성적인 말이나 행동 때문에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 1천185명 중 31명(2.6%), 일방적인 물리적 신체 접촉(입맞춤, 포옹, 특정 부위를 만지는 행위 등) 때문에 불쾌감이나 성적 수치심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13명(1.1%)에 달했다. 본인이 아닌 타인의 사례를 목격하거나 이야기 들었다는 사람은 63명(5.3%)으로 조사되었다. 성폭력 사건이 대단히 파급력이 큰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감안할 때, 사례의 숫자가 결코 작지 않다. 대학원생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

② 폭언 및 폭행
폭언을 경험해 봤다는 대학원생은 1천185명 중 72명(6.0%), 폭행을 당해봤다는 대학원생은 3명(0.3%)으로 조사되었다. 폭언 및 폭행을 목격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62명(5.2%) 이었다. 폭행을 당해본 대학원생 3인 중 지도 교수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례는 없었다. 그렇기에 2022년 사건이 이례적인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증거가 남기 힘든 폭언은 여전히 대학원생을 괴롭히는 방식 중 하나인 것 같다. 응답자 62명 중 45명(60.8%)이 지도 교수로부터 폭언을 당했다고 응답하였기 때문이다.

③ 사적 인력 동원
연구 활동과 무관한 사적 심부름에 대학원생을 동원하는 경우도 많다. 응답자 1천688명 중 166명(9.8%)이 지도 교수의 사적인 일에 동원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운전, 점심 배달과 같은 개인 심부름에 동원된 적 있다는 사람이 81명(4.8%)이나 있었고, 개인 사업에 동원되었다는 응답자도 17명(1.0%)이나 되었다. 2021년 조사에서는 없었지만 이전 조사에서는 가정집 이사, 교수 자녀 유치원 하원 도우미 또는 개인교습 등 충격적인 사례도 다수 보고된 바 있다.

④ 방치
앞선 심각한 유형과는 다르게 아무도 모르게 대학원생을 절망케 하는 유형의 인권 침해 유형이 바로 ‘방치’ 유형이다. 응답자 1천645명 중 200명(12.1%)은 지도 교수에게 한 주 동안 개별적인 연구 지도를 받아 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으며, 무려 418명(25.4%)은 일주일에 연구 지도를 받는 시간이 고작 15분 미만이라고 응답하였다. 193명(11.7%)은 지도 교수가 연구 지도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전혀 할애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으며, 지도 교수가 자신의 연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자도 131명(8.0%)이나 된다. 연구하러 온 대학원생에게 연구 지도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연구에 대한 압박감을 오롯이 대학원생 홀로 견뎌야 하는 것만큼 대학원생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열악한 대학원생 인권 실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문제의 원인이 한 가지로 만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제도적이며 문화적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정년보장 교수제도, 교수의 지나친 권한, 학계 문화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먼저, 학교의 정년보장 교수제도가 문제다. 훌륭한 교수님들도 꼭 테뉴어 심사 할 때만 되면 돌변해서 ‘괴물’이 된다는 제보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교수에게 가해지는 실적 압박은 곧 대학원생을 쥐어 짜내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이 과정에서 많은 대학원생들이 ‘갈려’ 나간다. 단기간의 연구 실적이 아닌 다른 평가 요소도 정년보장 교수 임용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또, 학생에 대한 교수의 무분별한 권한 역시 통제되어야 한다. 가령, 졸업 심사 시 지도 교수의 권한은 막강하다. 졸업심사위원회(이른바 커미티)가 존재하지만, 위원장인 지도 교수가 졸업 여부를 결정하다시피 한다.

박사과정 졸업생으로서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정의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졸업심사위원회가 본래 의도대로 진행될 수 있는 섬세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학계의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학계에서 지도 교수는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 안에 중심적인 인물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학계의 중심 그룹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교수의 인맥이 정말 중요하다. 지도 교수에게 밉보였다가는 학생은 졸업을 하더라도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문제가 발생해도 묵인하며 참는 대학원생이 많다. 대학원생에게 인권 침해를 한 전력이 있는 교수는 표절에 준하는 정도로 학계에서 배제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대학원생 인권 문제의 가장 큰 비애(悲哀)는 대학원생이 결국은 교수가 된다는 데 있다. 자신이 당했던 안 좋은 과거 사례를 반복 및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극복하려는 교수들의 사례도 생각보다 많이 봐왔다. 하루빨리 이러한 악(惡)의 대물림이 끊어지고 건강한 대학원 연구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동혁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였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를 졸업하였다. 디지털 인문학이 전공 분야이며, 인문계와 이공계를 교차해 본 경험 덕에 공학적 인문학, 인문학적 공학에 관심이 많다. 2021년부터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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