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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소통의 국가경영
토론과 소통의 국가경영
  • 박현모
  • 승인 2022.09.1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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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㉖_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
조선 제3대 왕 태종과 태종비 원경왕후가 함께 잠든 헌릉이다. 사진=박현모

‘조선에는 통치만 있고 정치가 없었다’
지난해에 출간된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 원장의 책 『정치란 무엇인가?』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다. 왕과 사대부 같은 극소수의 특권층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 백성들을 일방적으로 통치하는 나라가 조선이라는 관점은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조선 시대 사람들이 ‘행위하고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서 ‘그건 정치가 아니라 통치’라고 규정 짓는 것은, 나아가 그 통치는 정치보다 아래에 있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즉위 제일성이 ‘의논하자’였고, 신하들로부터 “토론을 즐기는[樂於討論·낙어토론] 임금”이라고 불린 세종은 예외라고 치자. 세종의 아버지 태종은 어떤가?

재위 15년째인 1415년 6월 14일, 태종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 사람 쓰는 일과 나랏일 처리하는 데[人事·인사] 잘못이 있지 않은가 싶다”면서 전국의 관리로 하여금 ‘시정(施政)의 득실과 민생의 질고(疾苦)에 대해 모조리 개진할 것’을 요청했다[求言·구언].

사흘 뒤인 6월 17일에 140여 조항의 진언(陳言)이 올라왔다. 왕은 올라온 진언에 대해서 육조와 승정원의 관리로 하여금 시무(時務)에 절실하지 않은 것은 제외시키고, 실행 가능한 중요 안건 4가지를 뽑아 토의[擬議·의의]하게 했다.

토의하는 방식이 인상적인데, 먼저 왕이 안건별로 질문하면 담당자가 요약 보고했고, 그 뒤 ‘집중 토의’를 거쳐 왕이 최종 결정했다. 다시 5일 뒤인 6월 22일에는 지방의 감사와 대소 관리가 올린 진언 200여 통이 올라왔다.

이 중 33조항이 토의되었는데, 이날 실록에는 조항마다 ① 의견 올린 사람 이름과 주요 내용[陳言·진언], ② 토의해 내린 결론[議得·의득], ③ 왕의 최종 결정[從之·종지/不允·불윤]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왕이 구언(求言) 요청을 하고,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이 그 요청에 응해 수백 개의 정책 제안을 신속하게 올리며[陳言], 주요 사항에 대해 어전에서 토의한 후, 담당자의 계목(啓目: 실행 방안) 검토를 거쳐, 왕이 최종 결정 후 시행하게 하는 것을 보면, 흡사 선진 국가의 입법 과정을 보는 듯하다.

옥스퍼드대 파이너 교수는 『정부의 역사』(1999)라는 책에서 ‘군주정에서도 활발한 토론의 정치(forum in the palace)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태종과 세종 정부의 토론은 그 적절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활발한 토론문화가 있었다’고 말하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보다 나는 정치에서 행정이나 경제, 그리고 법을 제외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반대한다.

정치(politics)라는 말이 함원장께서 중시하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에서 유래한 것처럼, 정치는 국가경영(statecraft) 전체를 아우른다. 말로 자신을 드러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인격적 정체성을 표출하는 ‘말의 정치’는 물론 중요한 정치 영역이다. 하지만 토의 내용을 민생과 국방, 그리고 재판 영역에서 실행시키는 ‘일의 정치’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정치의 핵심 영역이다.

재위 중 ‘토론을 즐기는[樂於討論]’ 임금이라 일컬어졌던 세종은 누구보다 소통을 중시했다. ‘소통하지 않은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라’고 보았던 세종은 설정된 목표에 왜 도달해야 하는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조만간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지를 상세하고 명확하게 일깨워가면서[曉喩詳明] 함께 나아갔다.

하지만 세종을 뛰어난 정치가로 평가하는 것은 그가 ‘말’에 멈추지 않고 ‘일’을 이루어낸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재위 중반부에 이르러 온몸이 망가지고 갖가지 질병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세종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설득하고, 추진하고, 확인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말이 아닌 몸으로써, 결과로써 백성을 섬기는 정치를 해냈다. 세종의 정치를 도왔던 집현전 학사들은 ‘말’과 함께 ‘일’을 빼어나게 수행했던 경세가들이었다.

나는 예송(禮訟) 등 ‘말의 정치’가 치성하던 조선 후기가 집현전 학풍, 즉 국가의 당면과제를 관리하고 해결하는 ‘일의 정치’를 중시하던 조선 전기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논만 분분하고 한담만 일삼다가’ 마침내 ‘일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태종, 고전 읽기로 회의를 시작해 말과 일을 엮는 방식으로 창의적 회의를 이끌었던 세종의 국가경영 리더십에서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배우기를 희망한다.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
1999년 서울대에서 「정조(正祖)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1년부터 14년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조와 세종, 정도전과 최명길 등 왕과 재상의 리더십을 연구했다. 2013년부터는 미국 조지메이슨대, 일본 ‘교토포럼’ 등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형 리더십’을 강의하는 한편, 시민강좌 ‘실록학교’를 운영해 왔다. 현재 여주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및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세종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태종평전』, 『정조평전』등이 있고, 「경국대전의 정치학」, 「정약용의 군주론: 정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등 80여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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