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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나를 닦고 욕심을 내려놓다…10년 걸린 주석
‘주역’으로 나를 닦고 욕심을 내려놓다…10년 걸린 주석
  • 임동석
  • 승인 2022.09.06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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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한다_『완역상주 주역』 임동석 지음 | 보고사 | 1354쪽

공자가 매달리고 공부하고자 했던 주역
주역 원리에서 시작된 컴퓨터의 2진법

아주 옛날 청년 시절 유학 가기 전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상도동을 찾아가 이종술(李宗述) 선생이라는 분에게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을 들을 때였다. 당시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도대체 세상에 이런 책이 왜 있는지, 또 왜 이런 책에 매달려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들었다. 더구나 띄어쓰기도 없이 잔글씨로 빽빽한 주석의 그 책은 우선 문자 해석부터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내용은 더구나 완전 뜬구름 잡는 것이었다. 아무리 황당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서사라면 『산해경』처럼 ‘백부일진(百不一眞)’(백 가지 중 하나도 진짜는 없음)의 상상력을 편 것이라 치부하면 그만이었지만, 온통 현학적으로 앞뒤 연결이 되지 않는 구절들 뿐이었다. 

 

뒤에 다시 우전(雨田) 신호열 선생에게 원본집주 『주역』을 듣게 되었다. 이는 그나마 현토와 초보적인 옛 언해가 있어 어렴풋이 짐작은 갔지만, 그래도 역시 격화소양이었다. 그래서 우선 64괘의 괘명과 순서라도 외워보겠다고 중얼거렸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이몽룡이 춘향의 추천(鞦韆) 모습에 반하고 돌아와 마음을 다잡고 공부한답시고 이것저것 첫 구절만 뒤적이다가 “『주역(周易)』을 익난듸, 「원(元)은 형(亨)코 리(利)코 정(貞)코」, 춘향이 코, ᄯᅡᆨ딘 코, 조코 하니라. 그 글도 못 익것다”라고 하여, 현토의 ‘코’자에 걸려 춘향이 코를 떠올린 이도령의 인간다움이 나와는 더 가까웠다.

공자는 『논어』(述而)에서 “加我數年(가아수년), 오십이학(五十以學)『역(易)』, 가이무대과의(可以無大過矣)”(나에게 몇 년만 더 시간을 빌려주어 『역』의 공부를 마치게 해 준다면 큰 허물은 없을 텐데)라고 술회하였고, 『사기』(孔子世家)에는 “공자만이희(孔子晩而喜)『역(易)』, 위편삼절(韋編三絶)”라 하여 공자가 그토록 매달렸다니, 어떤 책이기에 하는 의문과 고통을 주는 책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생활에 쉽게 볼 수 있는 바코드나 QR코드는 모두가 수학적으로는 2진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지금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전자기기들은 모두 컴퓨터의 논리 0과 1의 2진법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역』이 음양(陰陽)으로 시작하였고, 이를 음효()와 양효(−)로 표시하였고, 숫자로는 양(陽)을 ‘구(九)’로, 음(陰)을 ‘륙(六)’이라 한 것일 뿐이다. 이에 혹자가 “『주역』에 인공위성을 쏘는 원리도 다 들어 있다며?”하고 내게 질문을 한다. 맞다. 지금 컴퓨터가 2진법이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모든 전자기기의 전산 원리가 2진법에 의해 제어되고 운용되고 있으니 『주역』의 원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틀린 말도 아니다. 나는 그만 이러한 ‘2진법’에 필이 꽂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관련 책과 당 이정조(李鼎祚)의 『주역집해』(상수학)는 물론 우리의 『주역언해』까지 모두 갖추어놓고 덤벼들었지만 그래도 활연(豁然)함은 없었고 아무리 풀어도 비문(非文)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기왕에 벌려놓은 춤’인데, 다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

 

『주역』은 유학(儒學)의 삼경 중 한 경전이다. 유교는 수기치인, 인, 의, 예, 충, 효를 기본 개념으로 한다. 유교를 나타내는 이미지. 이미지=위키백과

공자는 70세를 “종심소욕부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하였는데, 이제 나도 일흔이 넘었으니 이 책에 덤벼본다고 ‘허물이 되랴?’라는 무모한 자유로움이 집필 동기였다. 이리하여 드디어 완역에 상주를 붙여 무려 양장본 1천360여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을 10여년에 걸쳐 마무리는 하였다. 나는 이 책을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는 책’(비결서:秘訣書)이라기 보다, ‘마음 다잡는 책’, ‘나를 닦고 욕심을 내려놓는 책’이라는 관점에서 편한 마음으로 작업해온 것일 뿐이다. 내 가슴을 울린 구절, 이를테면 “항룡유회(亢龍有悔)”나 “이상견빙지(履霜見冰至)”라거나, “독립불구(獨立不懼), 둔세무민(遯世无悶)”, 또는 “군자자강부식(君子自彊不息)”이라거나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 적불선지가(積不善之家), 필유여앙(必有餘殃)”, 또는 “범익지도(凡益之道), 여시해행(與時偕行)” 등은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이처럼 “과거사명여경(過去事明如鏡), 미래사암사칠(未來事暗似漆)”이라 하였으니 다만 “호미춘빙기차신(虎尾春冰寄此身)”이니, 그저 조심하며 삼가며, 하늘과 땅에 부끄러운 일 하지 않도록 ‘무부경(毋不敬)’을 다짐하며 살라고 일러주는 책이 바로 이 『주역』이 아닌가 여겨 완역상주하였을 뿐이다.

 

 

 

임동석
건국대 명예교수·중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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