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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미부터 혈투까지 순간을 보존... 화석이 밝히는 생명의 진화
교미부터 혈투까지 순간을 보존... 화석이 밝히는 생명의 진화
  • 유무수
  • 승인 2022.09.02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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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왓! 화석 동물행동학』 딘 R. 로맥스 지음 | 밥 니콜스 그림 | 김은영 옮김 | 뿌리와이파리 | 348쪽

오늘날 동물처럼 교미한 증거, 쥐라기 암석의 거품벌레 화석
화석 50개가 알리는 탄생·죽음은 영화처럼 극적이고 진기해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2014, 폴 앤드슨 감독)의 마지막 장면은 ‘키스하는 연인 화석’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연인이 된 노예 검투사와 귀족의 딸이 포악한 로마귀족을 피해 도망치던 중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화산쇄설물이 바로 앞으로 몰아닥치는 순간 연인은 키스를 했고, 그 순간이 고스란히 화석으로 남았다는 설정이었다. 고생물학자인 딘 R. 로맥스는 고생대와 중생대에 살았던 동물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화석 중에서 영화처럼 극적이고 진기한 화석 50개를 뽑아 소개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화석에 담긴 이야기를 기반으로 삽화까지 곁들였다.

 

저명한 어류 화석 발굴팀은 2005년 멸종한 어류인 판피류의 화석을 발굴했다. 강력한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3억8천만 년 전에 임신한 척추동물의 화석임이 확인됐다. 암컷 성체와 연결된 밧줄 같은 끈은 탯줄로 밝혀졌다. 그 이후 임신상태의 표본들이 추가로 발견됐다. 고생대의 초기 어류들도 현대의 동물과 똑같은 방식으로 새끼를 낳아 기르는 생활을 했다는 의미다. 

1억6천500만 년 전 쥐라기 암석에 보존된 한 쌍의 거품벌레 화석은 오랜 옛날 중생대에도 오늘날의 동물처럼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거품벌레가 교미 중일 때 화산이 폭발했고 화산재와 함께 매장된 덕분에 교미의 순간이 보존될 수 있었다. 현생에서 거품벌레의 후손들이 짝짓기를 할 때와 똑같은 자세는 화석의 모습이 짝짓기 중임을 판단하는 근거였다. 거품벌레의 생식행위는 적어도 1억6천500만 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랜 과거인 4억7천 만 년 전에 교미중인 거북 한 쌍의 화석도 발견됐다. 포옹하고 있는 중에 뜻하지 않게 호수의 유독성 물질이 있는 구렁 속에 빠졌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화석이다. 

1971년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견된 화석은 공룡들이 지금 살고 있는 동물들처럼 싸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폴란드-몽골 연합 고생물학자 팀은 고생물학 역사상 절묘한 발견 가운데 하나를 접했다. 7천500만 년 전의 공룡인 프로토케라톱스와 벨로키랍토르의 발톱과 다리가 엉킨 모습의 화석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들이 한창 혈투를 벌이던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 위로 모래언덕이 무너졌거나, 싸움 도중 모래폭풍에 갑자기 묻혔거나 싸움 끝에 함께 죽었다가 모래바람에 서서히 덮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공룡 고병리학의 연구에 의하면 거대한 포식자 공룡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아래턱에 구멍이 생겨 사망한 경우가 있으며, 8천500만 년 전에서 6천600만 년 전의 초식공룡이 꼬리척추에 종양이 생겨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화석은 5억7천만 년 전에서 6천600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동물들의 세계에 오늘날과 똑같이 교미의 방법으로 유전자를 계승시키고자 하는 의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다리나 날개로 달리는 활동, 약육강식의 투쟁,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수억 년 단위의 과거 지구를 상상하게 하는 과학적 사실은 창조론과 진화론, 생명의 기원과 관련한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화석은 인류에게 진화의 모습을 전해준다. 이미지=픽사베이

5억7천만 년 전의 화석은 왜 없는가. 어떻게 갑자기 캄브리아기를 거치며 생명체의 대폭발이 일어나 이미 상당히 정교하게 진화된 형태의 동식물들이 한꺼번에 출현할 수 있었는가. 왜 하늘과 땅과 바다의 거의 모든 동물은 누가 기획한 것처럼 눈과 귀와 콧구멍이 두 개인가. 세 개나 네 개로 진화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왜 거의 모든 동물은 굳이 수컷과 암컷의 번거로운 교미라는 일률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고, 새끼를 낳고 키웠는가. 새끼를 잉태한 후에는 어미가 소화한 영양분이 어미의 몸으로만 퍼지지 않고 고도로 일정한 비율로 태아에게 전달되고, 태아도 몸을 구성하는 기관들이 점진적으로 균형 있게 자라는, 이처럼 기적적으로 정교한 시스템이 생명 없는 무기물에서 비롯된 원시 세포를 거친 진화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믿는 데에는 창조론을 믿는 것만큼이나 신앙적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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