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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험의 안내자로, 학생들의 독자로
글쓰기 모험의 안내자로, 학생들의 독자로
  • 황호덕
  • 승인 2022.08.29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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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⑪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국어국문학과)

팬데믹이 앗아간 강의실이 곧 회복될 거라는 희망보다 학생과 교수를 괴롭히는 것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다음 학기엔, 다음 달엔, 다음 주엔, ‘비대면’이 끝날 것 같지만, 개강을 코앞에 둔 지금도 다음 학기 강의실이 안전할지, 거기서 우리가 내내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고도를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이 기다림 안에서의 대화가 상례가 되고 있다.

2020년 1학기 비대면 강의가 시작되고 많은 대학, 많은 교수, 많은 학생들이 당황했다. 함께 있음, 평등한 자들의 이성의 공동체 같은 강의실의 (이상적) 전제들이 새로운 강의 형태에서 관철될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일하고 공부하는 대학은 근 ‘600년’ 만에 취임했다는 이공계 출신 총장의 AI 관련 정책 때문에 준비하던 온라인 플랫폼을 즉시 사용할 수 있어서 녹화강의나 실시간 스트리밍 강의 등을 팬데믹의 심화와 동시에 사용할 수 있어 비교적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온라인 플랫폼들의 역진화 혹은 쓸모의 확장을 우려할 날이 임박해 있는 듯도 하지만. 

교수는 독서가로 학생은 문필가로

주로 녹화강의가 권장된 첫 학기는 모두가 그렇듯이 고통스러웠다. 강의는 1~2주 전에 미리 준비되어 업로드되어야 했고, 보다 충분한 접근 시간도 있었지만, 면벽의 수도는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아주 좋지 않았다. 이른바 ‘인강’에 익숙한 학생들 쪽보다는 교강사들이 더욱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을 터이다. 하루 이틀 준비하던 강의를 일주일 내내 준비하고 밤을 새워 강의 원고나 시놉시스를 만들어도 결과는 참담했다. 무엇보다 격자 안의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듣던 우리들은 더없이 외로웠다. 

시행착오 끝에 ‘알찬 내용의 명강’보다는 ‘강의실의 임장감’ 즉 함께 있음을 어떻게 살려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장소(topos)가 주제(topic)다. 지적 모험 혹은 사고가 해방되는 나 자신의 경험들을 떠올렸다.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구식이었다. 인공지능의 미래가 어떻든, 이 플랫폼의 미래가 여하한 것이든, 지금 함께 있는 ‘자연 지능’들의 생각을 듣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않을까. 말하자면 그 모든 강의를 듣기 위주, 글쓰기 위주-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당신들의 생각과 글쓰기로 채워가는 방식으로 되돌렸다. 

여전히 수강생이 많은 강의는 녹화강의로, 토론이 가능한 규모의 강의는 실시간으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강의를 말하는 입이 아니라 듣는 귀의 일로 바꾸었다. 그러자면 ‘나’는 엄청난 독서가가 되어야 했고 ‘너’는 필사의 문필가가 되어야 했지만.

황호덕 교수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글로 풀어낼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사진=픽사베이

비대면에도 강의의 최대 30%는 토론

듣기?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들었다. ① 학생들은 내가 읽은 것을 (강의 전에) 먼저 읽는다. (리딩 중심) ② 학생들은 내가 강의할 것을 미리 생각하고 그에 대해 쓴다. (글쓰기 중심) ③ 선생은 그들이 미리 읽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강의한다. (내 말은 거들뿐). 이 셋이 끝나면 ④ 토론하고 그들의 글에 대해 논평한다. ⑤ 강의 3분의 2 지점을 목표로 보다 긴 논문이나 비평문을 써나간다. ⑥ 강의의 최대 30퍼센트는 학생들 자신의 글에 대한 상호 토론으로 채운다. ⑦ 학생들은 기말에 수정된 평문을 제출한다. ⑧ 기말시험은 한 달 전에 이미 공개된 문항을 중심으로 한 학기 공부를 정리하는 것으로 하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쓸 수 있는 만큼 쓰도록 되도록 시간제한을 두지 않는다. (보통 서너 시간이면 끝난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쓴 글은 서로에게 가능한 개방하고, 선생은 모든 글에 대해 짧은 독후감을 쓴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식견에 감탄한 강의보다는 내게 좋은 글이 남아 있거나 그럴싸한 생각이 남아 있는 강의가 내게 좋은 강의였다. 지적 모험, 글쓰기의 모험의 안내자로, 그들의 독자로 남기로 하자, 그러자 우리는 여전히 희미한 대로 나와 너가 함께 있음이 조금 분명해졌다. 

 

황호덕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캘리포니아 주립대(어바인), 프린스턴대, 일본 조사이 국제대에서 연구와 강의를 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현대비평을 전공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벌레와 제국』, 『프랑켄 마르크스』,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 『개념과 역사, 근대 한국의 이중어사전』(전 2권,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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