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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제시한 논어 속 리더의 참 모습
공자가 제시한 논어 속 리더의 참 모습
  • 이한우
  • 승인 2022.08.25 09: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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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㉔_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중국 고대의 사상가 공자. 사진=위키백과

필자는 20년 가까이 ‘논어’를 탐색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내린 결론은 “공자는 강명(剛明)한 군주를 지향했다”, 이 한 마디다. 실제로 강명(剛明)은 ‘논어’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역으로 ‘논어’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에게 강명함을 길러준다.

첫 구절,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는 단순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니다. 군주되려는 자는 문(文)을 익혀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를 조금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말이다. 왜인가?
문(文)이란 글이 아니라 애쓰고 꾸미고 드러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혹 문식(文飾)이라고 해서 부정적 뉘앙스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공자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고 해서 애씀과 바탕, 문과 질이 균형을 갖추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애씀과 바탕, 문질을 통해 사람을 알아본다[知人].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이 바로 명(明), 즉 눈 밝음이다. 눈 밝음을 기르는 것이 바로 학문(學文), 즉 사람이 사람다워지려고 애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강명 중에서 명(明)은 바로 이런 방법을 통해 함양할 수 있다.

그러나 눈만 밝다고 해서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이를 알아보는 안목은 명이지만 그런 사람을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강(剛)이다. 이는 강하다, 세다는 의미의 강(剛)과는 구별된다. 오히려 한결같다[一]는 뜻이다. 한결같다는 것은 오래간다[久=恒]는 뜻이기도 하다.

리더의 오래감이란 한결같음이다. 그래서 뛰어난 이를 알아보았으면 그를 적소(適所)에 두어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게 지켜주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조직에는 서로 간의 질투나 음해, 중상모략 등이 있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이를 참소(讒訴)라고 했다. 근거없이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조직 내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 문제를 일찍부터 정확히 통찰했다. ‘논어’에는 딱 한 번 명(明)에 대한 공자의 풀이가 나온다. 안연편이다.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밝다[明]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讒]와 살갗을 파고드는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그 정사는 밝다고 할 만하다.”

눈 밝은 리더라면 아랫사람이 하는 말을 미리 알아서 저 말이 정말 잘못을 고발하는 것인지 아니면 없는 잘못을 짜낸 것인지를 바로 알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의 이치[事理], 즉 예(禮)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주희는 문(文)을 고문(古文)으로 축소시키고 예(禮)는 예법이나 가례에 가둬버렸다. 대신 그가 강조한 것은 도(道)다. 물론 공자도 종종 도(道)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문(文)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자한(子罕)편을 보자. 이때 공자는 광(匡) 땅이라는 곳에서 죽을 위기를 넘기는데 그때 공자가 하는 말을 음미해보라.

공자가 광에서 두려운 일을 겪었다. 그때 공자가 말했다. 
“문왕(文王)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니 문(文)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아마도 이 문을 없애려 했다면 뒤에 죽는 사람(공자 자신)이 이 문을 체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나는 이 문을 체득하였으니) 하늘이 이 문을 없애지 않으려 할 것이니 광 땅 사람들이 나를 어찌 하겠는가?”

문(文)이란 공자에게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흔히 중문경도(重文輕道)했다고 하고 주희는 중도경문(重道輕文)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강명(剛明)과 문질(文質)만 정확히 이해하고 체화해도 얼마든지 현대 조직사회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다. 또한 민주국가에서 유능한 지도자를 뽑는 잣대로도 활용할 수 있다. 최근 연이어 대통령들이 불행한 일을 당하고 있다. 무공(無公)하여 문제가 되고 무명(無明)하여 문제가 되며 굳세지 못해 문제가 되고 있다.

새 정부의 당면 과제도 우리 사회에 무너져버린 공(公)을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참고로 공(共)은 공(公)과 전혀 다르다. 혼자서도 공(公)을 정립할 수 있지만 혼자서 공(共)을 이루지는 못한다. 또 두 명 이상이면 공(共)이 가능하지만 수만명이 모여도 공(公)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시민들도 이같은 제대로 된 리더상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민주사회 지도자의 리더십 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부터 신문기자로 일했고 2003년 조선일보 논설위원, 2014년 조선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2016년부터 논어등반학교를 세워 논어, 주역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로 논어를 풀다’,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이 있고 반고의 ‘한서’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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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식 2022-08-25 20:49:30
필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