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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장군 아귀·올출비채’ 한국 요괴, K-콘텐츠의 상징으로 부활
‘구두장군 아귀·올출비채’ 한국 요괴, K-콘텐츠의 상징으로 부활
  • 최승우
  • 승인 2022.08.16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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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소설 76편에 등장하는 157종의 요괴 서사 고찰
한국판 스토리텔링, 새로운 한류로 발돋움하는 계기 마련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에서 한국 고전소설 76편에 등장하는 157종 ‘요괴’의 서사를 심도 있게 분석해 한국형 요괴학의 시작을 알릴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이후남 지음)를 지난달 25일 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요괴를 ‘비인간이면서 기괴하고, 인간세계에 해를 끼치다가 퇴치되는 존재’로 정의하고, 이 정의에 부합하는 요괴를 『최고운전』, 『금방울전』, 『명주보월빙』 등 한국 고전소설 76편에서 찾아내 총 157종 요괴의 서사와 특징을 다뤘다. 

대표적인 요괴 이미지로는 구두장군 아귀, 올출 비채, 은행나무 귀신, 여우 정령, 응천대장군 등이 있다. 예를 들어 구두장군 아귀는 머리가 아홉 개고 성기가 없어 음양의 이치를 모른다. 덩치는 집채만 하고 미녀를 좋아하여 3천명을 납치하다 김원의 칼에 맞아 머리가 잘려 죽는다. 구두장군 아귀가 괴물의 형상이라면 올출비채는 여성이다. 마을 사람들과 행인들을 유혹해 넓은 칼로 쳐서 죽여 면을 만들어 먹거나, 물에 빠뜨려 살이 퉁퉁 불면 물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혹은 인육을 소고기에 섞어 팔았다. 후에 살인 행각이 드러나 사형당한다. 

은행나무 귀신은 눈이 넷이고 팔은 여섯이며 온 몸이 황금빛에 형상이 흉악했다. 송나라의 황운과 설연에 의해 잘려 죽는다. 여우 정령은 천년 묵은 여우로서 달의 정기를 흡입하고 인간에 빙의하여 조종한다. 신라 장군 김유신이 사냥개를 풀어 죽였다. 마지막으로 응천대장군은 키가 5미터에 달하는 해적인데 몸은 쇠이고 머리는 구리라 천하무적이었다. 새와 짐승을 잡아먹고 표류한 이들을 강제로 부하로 삼았다. 어느날 우연히 섬에 표류한 임성 일행이 읊은 비밀 주문에 수천개의 칼과 선명봉에 맞아 푸른 피를 쏟으며 죽는다.

머리가 아홉개인 포악한 구두장군 아귀.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이들을 살펴보면, 여우나 돼지 등의 동물류가 다수를 차지하며, 나무귀신이나 작품에 맞게 새롭게 창작된 독특한 요괴 등 그 양상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괴들의 생김새 및 행동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더불어 요괴들은 인간에게 다양한 양상의 장난질을 치며, 이를 퇴치하는 방법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특이점을 갖는다.

요괴는 소설 속 작은 부분이 아닌, 요괴 서사 자체가 작품 전체의 내용이 되거나 작품을 흔드는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기능 역시 단순 삽화 정도가 아닌 보다 다층적인 면에서 분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간 한국 고전소설은 주제나 인물 연구에 치우쳐 왔다. 따라서 오늘날의 요괴 연구는 작품 구성 입자로서 간과할 수 없는 소재이자, 삽화 연구의 자료로서 그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후남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는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 관련 기록을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한국형 요괴’라는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한 신진학자다. 그는 한국 고전소설 속 요괴 서사를 7가지 관점으로 다뤘다.

인육을 즐기는 살인귀 올출비채.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먼저 요괴라는 용어에 대한 학술적 개념을 정의하고, 각 작품별 요괴 사서 단락을 요괴의 등장, 요괴의 작란, 요괴의 퇴치로 이어지는 3단계로 정리했다. 그리고 빈도 및 중요도에 따라 요괴 정체를 여우, 용·뱀, 돼지·원숭이, 나무, 기타 동물 및 무생물, 정체 미상으로 분류한 뒤, 요괴의 정체 변신 유무를 기준으로 정체 유지 유형과 인간 변신 유형으로 서사 유형을 나눴다. 또한 설화와 크게 구별되는 고전소설만의 요괴 서사 특징을 밝히고, 당대 고전소설 향유층의 요괴 인식과 그 의미를 자세히 살폈다. 마지막으로 향후 요괴 연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문화콘텐츠로써 요괴 활용 가능에 대해 살폈다. 다만 요괴의 정체가 정확히 밝혀졌다고 해서 반드시 생물학적인 동물 등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76편의 악성(惡性) 요괴에 더해 고전소설 126편에 나타난 선성(善性) 요괴를 연구해 망라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는 한국형 요괴학의 시작을 알리고, 나아가 요괴 서사 연구를 통해 한국 고전소설사의 지평을 여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한류 문화의 콘텐츠로 잠재성 충분

콘텐츠가 문화산업의 핵심인 오늘날, 요괴야말로 각종 콘텐츠 산업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다.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의 집약체인 요괴는 그 존재 자체가 캐릭터이며, 스토리다. 요괴 서사를 활용해 게임용 스토리텔링으로 확장하거나, 고전의 현대화를 통한 동화책, 만화책, 소설 등 출판물로의 각색, TV 드라마, 웹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 등 각종 매체로 확장과 변용이 가능하다.

요괴를 학문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문화산업의 큰 축으로 개발하는 일본의 요괴 산업처럼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 또한 현대적 변용을 통해 새로운 문화 가치를 창출하고 전 세계에 K-콘텐츠로 알릴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요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말초적이고 상업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학계와 대중문화계가 상생할 수 있는 건강한 콘텐츠로서 요괴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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