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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로 평전
김병로 평전
  • 최승우
  • 승인 2022.08.14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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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일 지음 | 386쪽 | 역사공간

민족 독립과 헌정의 길

파란만장한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인 김병로
법과 정의를 무기로 민족 해방을 위해 투쟁하다

가인 김병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사법의 토대를 놓은 법률가이면서 일제 식민지 법정에서 항일운동 관련 각종 사건을 수임하여 항일운동가들의 변호를 자처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가인은 항일변호사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항일변론과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크게 공헌했다. 그는 3·1운동 이후 형평사운동, 소작쟁의, 노동쟁의, 동맹휴학 등 각종 사건을 변호하는데 동분서주했다. 1923년에는 허헌·권승렬 등과 서울 인사동에 형사공동연구회를 창설했다. 외면적으로는 연구단체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항일변호사들이 공동전선을 형성, 법정을 통해 ‘독립운동이 무죄’임을 주장하는 독립운동 후원단체였다. 이 연구회는 독립투사들에 대한 무료변론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을 돌보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10여 년 동안 그가 맡았던 사건 가운데에는 여운형·안창호 등에 대한 치안유지법위반사건, 김상옥의사 사건, 광주항일학생운동, 6·10만세운동, 정의부·광복단 사건, 조선공산당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1927년에 이상재의 뒤를 이어 신간회의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고, 광주학생사건 때는 진상조사위원으로 활약했다. 가인은 개방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좌·우파의 항일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민족의 독립에 헌신했다. 그는 우익 민족주의자였으나, 독립운동가를 위해서라면 좌익과 우익을 가리지 않고 협력했다.

해방 이후에는 민족국가의 수립과 대한민국 헌법 및 사법부 독립에 기여했다. 그는 미군정 사법부장을 거쳐서 대한민국의 초대·2대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법률체계를 수립했다. 1947년에 남조선과도정부가 발족하면서 사법부 안에 법전기초위원회를 조직했으며, 법전기초위원회에서 민법, 재산권, 친족관계, 상업관계, 범죄처벌, 법률의 시행 및 사법행정의 절차에 관한 초안을 준비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을 마련하는 데에도 깊이 관여했다. 1945년 12월 3일에 김규식 등 정부요인과 국내 법률가 100여 명이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여기에서 헌법은 김병로, 정부조직법은 이인, 선거법은 한근조가 각각 책임을 맡았다. 이 때 입안한 헌법 초안은 이후 국회에 헌법기초위원회가 구성되었을 때 유진오 등 기초위원 20여 명이 수정을 가하여 헌법안을 만들었던 것이다.
강인하고 강직한 성품이었으며, 세태의 변전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곧은 절개는 후인들에게 깊은 감명과 교훈을 주고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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