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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성상인과 인삼업
근대 개성상인과 인삼업
  • 최승우
  • 승인 2022.08.1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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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필 지음 | 푸른역사 | 396쪽

개성상인들이 이끈 ‘가삼家蔘에서 고려 인삼까지’
“인삼업은 이미 19세기 중엽 ‘산업화’ 이뤄”

우리나라는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인삼 종주국’이다. 그러니 진작 이런 책이 나왔어야 했다. 식민사관이 아닌 우리 눈으로, 약효에 관한 흥밋거리 일화 모음이 아니라 산업사의 측면에서 인삼업 전반을 아우르면서 인삼업의 주역인 개성상인의 역할에도 주목한 그런 책이 필요했다. 개성상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양정필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이런 주제를 다루기에 맞춤인 역사가이다. 그래서 그의 노작인 이 책은 그 자체로 반갑고 값지다.

역사가의 눈으로 실증적ㆍ입체적 분석
역사 연구의 성패는 사료가 크게 좌우한다. 지은이는 근현대 150년간의 인삼업을 살피기 위해 승정원일기 등 널리 알려진 사료는 물론 당시 개성부의 〈호적세표〉, 이성계의 사저를 중건하는데 쓰인 〈목청전중건원조성책〉, 《외상장책》 등 숨어 있는 자료까지 들춰내 인삼업 발달사를 촘촘히 그려냈다. 예를 들면 1832년 공식 홍삼 수출량 8,000근을 제조하기 위해 삼포가 얼마나 있어야 했는지, 일제강점기에 홍삼 수출을 독점한 미쓰이물산의 수익이 얼마였는지 등을 숫자로 보여준다.
이뿐 아니다. 초창기, 전성기, 소강기로 나눠 황실과 일제 총독부의 홍삼 정책, 이에 대한 개성상인의 대응과 삼업계 개편, 삼포 경영 자금과 노동력 등 인삼업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설득력 있는 ‘개성 인삼’ 성공 비결
당초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됐던 인삼 재배는 어떻게, 왜 개성에서 뿌리를 내렸을까. 지은이는 개성이 1820~30년대 인삼 주산지로 각인된 원인으로 의주상인과의 협력관계, 홍삼을 제조하는 증포소의 이전, 개성 특유의 신용제도를 꼽는다. 개성의 ‘지방 출상인’들이 재배법을 들여왔고, 농사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웠던 개성의 자연조건 탓에 개성 사람들이 수익성 높은 인삼 재배에 매달렸던 것이 큰 이유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중개인을 두고 무담보 신용대출이 가능한 개성 특유의 시변 제도 덕분에 6년이란 재배 기간에 투여할 자금을 융통하기 쉬웠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원료인 수삼을 구입하는 데 편리함 등을 이유로 당초 한강 변에 있던 증포소를 개성으로 옮겨온 것도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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